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골적인 혐오표현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법적 장치가 미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권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는 OBS 라디오 '굿모닝OBS'에 출연해 대한민국 혐오표현의 실태와 법적 대응의 한계를 짚으며, 혐오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일상이 된 혐오, '개인'이 아니면 처벌 못 하는 법적 사각지대
김칠준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인근의 현수막이나 위안부 수요 집회 현장에서의 조롱 등을 언급하며 "참사 유가족과 역사적 피해자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위가 법의 심판을 비껴가는 이유는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특정 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혐오표현은 "여성은 이렇다", "이주민은 저렇다"는 식으로 집단 전체를 겨냥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집단에 대한 비난은 개별 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처벌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장애 비하 표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애인 개인을 지목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부정된 사례가 우리 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 국제사회는 '선동' 자체를 범죄로 규정... 한국의 변화 촉구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선진국들은 혐오표현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보고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상 '국민선동죄'를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을 처벌하며, 2017년에는 소셜네트워크법을 제정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혐오표현 삭제 의무를 부과했다.
프랑스 역시 인종, 종교, 성별 등을 이유로 집단을 모욕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처벌한다. 일본의 오사카시와 가와사키시 등 지자체도 조례를 통해 혐오표현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올해 5월,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 증가에 우려를 표하며 "혐오표현을 명시적으로 범죄화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입을 막는 폭력"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김 변호사는 명확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혐오표현은 소수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아예 배제하려는 시도라며 오히려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현재 국회에는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조장과 모욕을 금지하는 '혐오표현 규제법'을 비롯해, 정당 현수막의 혐오 표현을 제한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학교 내 혐오를 예방하는 '교육환경 보호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2019년 학생인권조례 합헌 결정 당시 "혐오표현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적 의사 형성 과정을 왜곡할 수 있어 제한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칠준 변호사는 혐오표현 규제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등한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라며, 공동체의 조건을 지키기 위한 입법적·사회적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오비에스라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