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배태용기자]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를 겨냥한 추가 관세 인상을 18개월간 미뤘다. 다만 현재 부과 중인 50% 관세는 그대로 둔 채, 내후년 중순 추가 인상 카드를 행사하겠다는 '예고'를 공식화했다. 국내 반도체 공급망 입장에선 당장 판이 뒤집히진 않지만 2년 반 뒤를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됐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중국의 반도체 산업 정책·관행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중국산 반도체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되 현재 관세율은 0%로 두고 2027년 6월 23일에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추가 관세율은 발효 최소 30일 전에 공지하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설정되는 관세는 이미 '중국산 반도체'에 부과 중인 50% 관세 위에 얹히는 형태다.
USTR는 조사 결과에서 중국이 대규모 보조금, 기술 이전 압박, 지식재산권 침해 등 비시장적 수단으로 반도체 산업 지배력을 키워왔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즉각적인 추가 인상 대신 '0% 시작→18개월 뒤 인상'이라는 완충 장치를 둔 건 미·중 정상 회담 이후 형성된 무역 갈등 '휴전' 기류를 완전히 깨지 않으면서 압박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당장 새 관세는 없지만 주목할 점은 고관세 환경은 유지되고 데드라인은 찍혔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별도 301조 조치를 통해 중국산 반도체 일부 품목에 50% 관세를 적용 중이다. 여기에 '2027년 6월 이후 추가 인상'이라는 시한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고객사와 공급망 입장에선 '언젠가 더 비싸질 중국산 반도체'를 전제로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하는 구도가 됐다.
단기 공급망 충격은 제한적이다. 미국 세트·서버 고객사들이 당장 계약 구조나 조달선을 급격히 바꿀 유인은 줄었다. 반대로 2027년 6월이라는 시한이 박히면서 내년부터는 3년 안팎을 바라보고 장기 공급 계약, 재고 운용, 생산 거점 다변화에 '관세 리스크 프리미엄'을 얼마나 반영할지 계산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AI 서버를 중심으로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강한 상황에서 미국 고객사 입장에선 중국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비(非)중국 공급망 선호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고용량 DDR5, 고대역폭 패키징 등에서 한국 업체에 유리한 판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반면 중국 내 세트·클라우드 수요 회복이 관세·보복 변수로 다시 지연될 경우 범용 D램·낸드 업황에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파운드리와 성숙공정 생태계로 시야를 넓히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중국에서 생산된 웨이퍼·패키징 칩에 50% 관세가 유지되는 한 미국·유럽 시장을 겨냥한 팹리스와 시스템 업체들은 중장기적으로 생산·조립·테스트 공정의 중국 비중을 줄일 유인을 계속 안고 간다. 당장 공장을 옮기는 단계가 아니라 어떤 공정부터 비중을 줄일지 어느 지역에 2번·3번 소스를 만들어 둘지 원산지 증빙과 관세 비용을 어떻게 계약에 반영할지 등을 설계하는 구간에 더 가깝다.
기대되는 점은 미국 고객사들이 중국 이외 생산거점을 찾을 때 한국·미국 내 생산거점을 함께 보유한 삼성전자 파운드리·SK하이닉스·국내 OSAT·소재 기업들이 대안 후보군에 오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 반면 중국 내 생산·패키징 비중이 높은 일부 후공정·소재 업체들은 '얼마나 빨리 non-China 라인을 만들 수 있느냐'가 생존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이 바뀐 게 아니라 '시간표를 공개한 것'에 가깝다"라며 "추가 관세율과 별개로 2027년이라는 데드라인이 찍힌 이상 미국 고객사 입장에선 지금 체결하는 장기 계약부터 관세·원산지 리스크를 가격과 물량 조건에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도 공장을 옮길지 말지의 단계가 아니라 언제든 옮길 수 있도록 설계·인증·벤더 구성을 열어 두는 단계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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