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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낼 일이 없어요" 장원영의 화를 가라앉힌 부처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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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25년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일본의 수도자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초역 부처의 말'이다.

초역(超譯)이란 처음(初) 번역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 문화, 시대 등의 차이를 뛰어넘어(超) 과감하게 의역했다는 일본식 표현이다. 그래서 '초역 부처의 말'이란 책 제목은 최근 들어 발굴된, 혹은 그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나 잘 소개되지 않아 덜 알려진 부처의 말씀을 새롭게 소개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남아시아 지역에 남겨진 부처의 말씀을 21세기 현대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풀어서 번역했다는 의미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에 가려졌다지만 2024년, 2025년 출판계는 한강에 푹 빠져 있었다. 2024년 10월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소년이 온다'를 시작으로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의 예전 소설, 에세이 등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채웠다. 지금도 이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았는데, 그 열풍이 한창이던 이듬해 초, 그러니까 2025년 1월 거센 한강 물결 속에서도 종합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올라간 책이 바로 '초역 부처의 말'이었다.

"독자들이 한강 책 사보느라 다른 책은 일절 보질 않는다"는 한탄까지 나오던 시점에서 '초역 부처의 말'은 어떤 메시지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걸까.

'쇼펜하우어'에 '부처'까지, 장원영의 힘


가장 널리 꼽히는 이유는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힘이다. 지난 1월 유튜브 '덱스의 냉터뷰'에 출연한 장원영이 요즘 읽고 있는 책으로 '초역 부처의 말'을 꼽았기 때문. 그 전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감명깊게 읽었다 해서 쇼펜하우어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장원영이 부처에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엄청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돌의 삶을 살고 있는 장원영이 이 책을 두고 "'원래'라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면 화날 일이 없다"고 언급한 뒤 책 판매량이 급속히 늘었다.

유튜브 채널 냉터뷰에서 '초역 부처의 말'을 언급하는 장원영.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채널 냉터뷰에서 '초역 부처의 말'을 언급하는 장원영. 유튜브 갈무리


또 하나의 요인은 ②MZ세대의 불교에 대한 호감이다. 개그맨 윤성호가 '뉴진(New+進)스님'이라는 법명으로 디제잉퍼포먼스를 벌이더니 EDM 음악 '극락왕생'까지 내놨다. 불교가 힙하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원래 어르신들이 탱화나 독경집 같은 걸 구하러 다니던 불교용품 행사였던 불교박람회는 MZ세대들이 불교 굿즈('묵언중' 티셔츠, '극락도 락이다' 키링 등)를 구하러 다니는 힙한 전시회가 됐다. 2030세대와 불교간의 거리가 한껏 좁혀진 상황이었던 셈이다.


불교 가르침을 EDM과 함께 전파해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진스님' 개그맨 윤성호씨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댄스 클럽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위카시옹 페이스북

불교 가르침을 EDM과 함께 전파해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진스님' 개그맨 윤성호씨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댄스 클럽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위카시옹 페이스북


마음을 밝게, 부처의 뜻은 그것뿐



불교 특유의 '내려놓기'가 요즘 세대의 갓생(God+생) 열풍과 통한 측면도 있다. 불교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중 하나는 복잡하고 갑갑한 현대사회에서 고민, 불만, 아집 같은 걸 그만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게 불필요한 소비나 감정적 소모를 버리고 일정한 루틴에 맞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경영하려는 요즘 세대의 갓생 열풍과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이들에게 코이케가 이 책에서 '부처 가르침의 정수'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둔 건 눈길을 끌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욕망, 화, 미망이라는 이름의 악을 만들지 않고
마음을 선하고 밝게 정화하여 성격을 개선하는 것
단지 이 정도가
부처가 전하려고 하는 가르침의 정수입니다.
법구경

④저자 코이케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눈길 끄는 외모에다 도쿄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는 이력, 그리고 젊은 시절 심한 방황을 했으나 명상을 통해 자신을 되찾게 됐다는 스토리 등을 바탕으로 코이케는 많은 책을 써냈다. 그 가운데 '생각 버리기 연습' '나를 지키는 연습' 등은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화제성 때문에 일본 스님인데도 이례적으로 MBC 다큐멘터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초역 부처의 말'을 기획, 출간한 포레스트북스의 서선애 편집이사는 "우리가 주목한 건 불교를 근엄한 종교가 아니라 편안한 철학으로 접근한 책에 대한 젊은층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라면서 "현재까지 33만 부 정도 나갔는데 다른 책들과 달리 40~50대가 아니라 20~30대가 주요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화는 교만함에서 온다



그러면서 이런 흐름이 반드시 '장원영 효과'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 이사는 "장원영이 언급한 이후 판매량이 급속하게 늘어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 이전에도 이미 젊은 층을 중심으로 8만 부 이상 판매가 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내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애닳아하지 않고 싶어하는, 그런 시대정신이 반영된 현상이란 얘기다.

'초역 부처의 말'의 핵심 메시지도 화내지 말라, 화를 다스릴 줄 알라는데 있다. 아니 시도때도 없이 울끈불끈 솟아오르는 화를 가라앉힐 코이케의 비법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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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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