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현상금 700만달러를 내건 심현섭 지명수배 령/출처: 미국 국무부 공식 인스타그램 |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던 한 암호화폐 개발자는 몇 년 전 프로젝트를 위해 원격으로 프리랜서 개발자를 고용했다. 그가 암호화폐로 지급한 급여는 21만6000달러(약 3억 1100만 원). 그는 이 돈이 싱가포르에 있다는 프리랜서 개발자에게 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암호화폐 거래 분석업체인 TRM랩스가 거래를 추적한 결과, 이 돈은 북한의 심현섭(42)이란 인물이 통제하는 디지털 지갑(계좌)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미 검찰은 심현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대신해 자금세탁 및 제재 회피에 관여해온 것으로 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위장 취업한 북한 노동자들과 사이버 절도범들 수천 명은 매년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억 달러에 달하는 불법 수익을 취해왔다. 이 막대한 수익은 김정은 정권을 위한 사치품 구매와 북한 당국의 무기 프로그램 자금 등으로 사용되지만, 숨기고 세탁하지 않으면 차단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심현섭과 같은 은행가들이다. 미 당국과 사이버보안 전문가 등에 따르면, 심현섭은 ‘심 알리’·‘심 하짐’ 등 이름을 사용하며 주로 아랍 국가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중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심현섭은 강력한 대북 제재 가운데 북한의 재정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수십 명의 북한 은행원들 중 한 명이다.
미 법무부 기소장 등에 따르면, 심현섭은 북한 대외무역은행 계열사 대표로 해외에 파견돼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활동했다. 그는 평양의 명문대를 다녔고 그곳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2019년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전했다. 류 전 대사대리는 탈북 전 심현섭을 10차례 이상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당국은 북한의 ‘IT 노동자들’이 해킹으로 암호화를 탈취한 뒤, 이를 심현섭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사법당국을 따돌리고 위장하기 위해 여러 개의 디지털 지갑을 거쳤다. 이후 심현섭은 미리 매수해 둔 UAE나 중국 등의 브로커에게 암호화폐를 건네 달러로 바꿨고, 브로커들은 이 돈을 심현섭의 위장회사 계좌로 보냈다.
심현섭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북한으로 바로 송금하진 않았다. 대신 직접 김정은 정권을 위한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에 나선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서구 유명 은행들은 심현섭에게 잇따라 농락당했다. 심현섭은 시티·JP모건·웰스파고 등 미 은행들을 통해 310건, 7400만달러(약 1096억 원)에 달하는 금융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심현섭에 700만 달러(약 104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다만 “그를 체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WSJ는 지적했다. 2023년 심현섭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미 재무부는 그가 2022년 이미 UAE에서 추방돼 중국 단둥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심현섭의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에 대한 미 재무부의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단 입장을 보냈다고 WSJ는 덧붙였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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