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원청 책임을 모두 넓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교섭·쟁의가 가능한 범위를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을 실제로 좌우하는 경우로 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이다. 원청이 하청의 임금·근로시간·안전 등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영역에서만 교섭과 쟁의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엇갈렸다. 노동계는 이번 지침을 두고 실제로는 사용자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쟁의의 실질적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경영계는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 산업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원청이 실제로 결정한 부분만 책임”=고용노동부는 26일 개정 노조법 제2조(사용자)와 제5조(노동쟁의)에 대한 해석지침(안)을 공개하고 행정예고에 들어갔다. 앞서 시행령 개정안으로 교섭 절차의 틀을 제시한 데 이어, 현장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원청이 어디까지 교섭 상대가 되느냐’는 문제를 정리한 후속 조치다. 노동부는 법 시행 초기 노사 간 해석 충돌과 교섭 혼선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지침의 핵심은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근로조건별 구조적 통제’로 명확히 한 점이다.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 산업안전, 작업방식, 복리후생 등 개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다면 그 범위에 한해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 과정에서 사용자 책임을 포괄적으로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예컨대 원청이 산업안전 분야에서만 구조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면,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서만 교섭 의무가 발생하며 임금이나 근로시간까지 자동으로 사용자 책임이 확대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침에는 “모든 근로조건을 전반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명시됐다. 원청 책임을 무제한으로 넓히기보다는, 하청 사용자의 근로조건 결정 자율성을 본질적으로 제약했는지를 기준으로 선을 긋겠다는 취지다.
통상적인 도급관계는 이번 지침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납기·품질 요구나 거래조건 협상·변경 등은 계약 이행을 위한 일반적 관리 범위로 보고 사용자 책임으로 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독립된 설비를 갖추고 제품을 납품하는 일반적인 사외하청 구조 역시 원칙적으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별 근로자에게 직접 지시했느냐가 아니라, 하청업체가 근로조건을 스스로 정할 수 없을 정도로 원청이 구조적 틀을 짜고 있었는지가 판단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합병·매각은 제외…정리해고는 교섭 대상=쟁의 범위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경영상 결정 전부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합병·분할·매각·양도 등 기업 조직 변동을 위한 결정 자체는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추상적·잠재적 수준에 그치는 만큼, 원칙적으로 교섭이나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결정의 이행 과정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이나 고용에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조치가 뒤따를 경우에는 교섭과 쟁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정리해고 자체가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이번 지침을 통해 정리해고 실시 여부와 절차, 고용보장 요구는 교섭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또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 과정에서 혼선을 줄이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안에서 교섭단위를 분리·조정할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의 판단 기준도 보완하기로 했다. 원청노조와 하청노조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상황에 따라 교섭단위를 나눠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지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구조적 통제라는 기준을 토대로 노동위원회와 지방관서가 일관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며 “행정예고 기간 동안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경총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모호”=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이날 해석지침(안)에 대해 “노동부가 개정 노조법 제2조에 새로 도입된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대상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지만, 일부 기준과 예시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모호하다”며 “개정법 시행 초기 산업현장의 법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총은 노동부가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 ‘계약 미준수 시 도급·위수탁 계약 해지 가능 여부’를 든 점을 문제 삼았다. 경총은 “일반적인 계약 불이행에 따른 계약 해지까지 구조적 통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도급계약의 기본 원칙까지 사용자성 판단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안전 분야에 대한 해석도 논란이다. 해석지침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법적 의무 이행과는 별도로, 산업안전보건체계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사용자 판단 예시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제시돼, 원청의 법정 안전보건조치 의무 이행 자체만으로도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쟁의 대상과 관련한 기준도 불분명하다는 평가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5호는 합병, 분할, 양도, 매각 등 기업 조직 변동을 목적으로 한 사업경영상 결정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노동부는 이러한 결정에 따라 정리해고나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고용보장 요구 등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총은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개념”이라며 “합병·분할 등 사업경영상 결정 그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이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사실상 광범위한 교섭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개정 노조법이 말하는 ‘사용자’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면 형식과 관계없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개정 취지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구조적 통제’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유로 사용자 책임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원청의 영향력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그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훈·정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