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국내 1위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이 던진 승부수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 혼다와 짓고 있는 미국 배터리 합작공장의 건물과 관련 자산을 혼다 측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매각 대금만 4조 2000억 원에 달하는 '빅딜'이다.
겉으로 보면 공장을 팔아치운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 매각 후 재임대)'이라는 고도의 금융 기법이 숨어 있다. 주인에서 세입자로 신분이 바뀌지만 공장은 그대로 돌리고 현금은 손에 쥐는 전략이다.
매각 대금만 4조 2000억 원에 달하는 '빅딜'이다.
겉으로 보면 공장을 팔아치운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 매각 후 재임대)'이라는 고도의 금융 기법이 숨어 있다. 주인에서 세입자로 신분이 바뀌지만 공장은 그대로 돌리고 현금은 손에 쥐는 전략이다.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위기 속에서 생존과 미래 투자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이 꺼내 든 카드에 시선이 집중된다.
"건물은 넘겨도 라인은 돌린다"… 4조 2000억 실탄 확보의 내막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혼다와의 합작법인 L-H 배터리 컴퍼니(L-H Battery Company)의 건물 및 구축물 일체를 혼다의 미국 개발·생산 법인(Honda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America)에 처분한다고 밝혔다.
처분 금액은 4조 2212억 원이며 오는 2026년 상반기 중으로 매각 대금이 유입될 예정이다.
핵심은 매각 후 재임대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공장 건물 소유권을 혼다에 넘기지만 해당 공간을 다시 임대해 배터리 생산 설비를 가동한다. 땅과 건물 주인은 혼다가 되고, LG에너지솔루션(합작법인)은 그 안에서 기계와 장비를 돌리는 세입자가 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인 합작 관계에서 공장 건물을 한쪽 파트너에게 넘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당장의 현금 유동성을 얼마나 갈급하게 필요로 했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자 동시에 혼다가 북미 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번 딜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이 얻는 가장 확실한 이득은 유동성이다. 당장 4조 원이 넘는 거액의 현금이 들어오면 재무 건전성 지표가 즉각적으로 개선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순차입금비율은 지난해 3분기 40% 수준에서 올해 3분기 59%까지 치솟았다. 1년 새 20%포인트 가까이 빚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벌어들이는 돈은 줄어드는데 미국 곳곳에 지어놓은 공장 건설 비용(CAPEX)은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이라는 비유동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은 재무팀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확보된 자금은 기존 차입금 상환에 쓰여 이자 비용을 줄이거나, 차세대 먹거리인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포드 쇼크와 EV 캐즘, 전략 수정 불가피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임차인 신세를 자처하게 된 배경에는 최근 불거진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17일 공시된 포드와의 대규모 계약 해지 건은 LG에너지솔루션 경영진에게 큰 충격을 안겼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 맺었던 9조 6000억 원 규모의 유럽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포드가 전기차 수요 둔화와 보조금 축소 등을 이유로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SK온 역시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생산 설비를 각자 소유하기로 하는 등 미국 내 배터리 동맹 전선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기차 보조금(IRA)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속도 조절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장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주요 고객사들이 전기차 생산 목표를 낮추고 하이브리드 비중을 높이는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도 무작정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리는 기존의 확장 일변도 전략을 고수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몸집 줄이기'와 '효율화'로 선회한 배경이다. 막대한 자금이 묶이는 부동산 자산은 파트너에게 넘겨 리스크를 분산하고 대신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배터리 생산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계산이다.
투자비의 가장 큰 덩어리인 건물값을 리스로 돌리면 초기 투자 부담이 대폭 완화된다. 매달 임대료를 내야 하는 비용(OPEX) 부담은 생기지만 당장 수조 원의 목돈이 나가는 것을 막고 현금 흐름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혼다의 속내... 왜 하필 지금 4조원 건물주가 됐나
혼다는 왜 이 시점에 4조 원이나 들여 공장 건물을 매입했을까? 혼다 역시 전기차 시장의 불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혼다는 토요타와 함께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을 펼치며 전기차 전환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온 기업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혼다의 이번 결정 뒤에 '공급망 안정화'와 '장기적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본다.
먼저 혼다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과 북미 현지 생산 체계 구축을 위해 배터리 거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더라도 2030년 이후를 내다보면 결국 자체 배터리 조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자금난으로 공장 건설에 차질을 빚거나 투자를 축소할 경우, 혼다의 전동화 로드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파트너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해 줌으로써 합작 프로젝트의 완주를 돕는 '백기사'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자산 가치 측면에서의 접근도 무시할 수 없다.
오하이오 공장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러스트 벨트 인근에 위치해 입지 조건이 우수하다. 향후 전기차 시장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면 공장의 자산 가치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혼다 입장에서는 현금이 풍부한 상황에서 우량 자산을 매입하고, 안정적인 임대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투자인 셈이다.
주도권 확보의 의미도 있다. 건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업장 운영에 있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향후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력 관계에서 혹시 모를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혼다는 '집주인'으로서 공장 활용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외에 하이브리드용 배터리 생산을 늘리거나 필요시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데 있어 혼다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LG엔솔의 다음 스텝, 'ESS'와 '조직 슬림화'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과 재무적 여력을 바탕으로 조직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미 신호탄은 쏘아 올려졌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직 개편을 통해 자동차전지, 소형전지, ESS전지사업부 산하에 흩어져 있던 생산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고, 최석원 부사장을 최고생산책임자(CPO)로 임명했다. 이는 가동률이 떨어진 전기차 배터리 생산 인력을 수요가 넘치는 ESS 라인으로 유연하게 재배치하겠다는 의도다.
LG에너지솔루션의 ESS 수주 잔고는 작년 50GWh에서 올해 3분기 120GWh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전기차용 파우치형 배터리 재고는 쌓이고 있다. 미국 미시간 공장과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라인을 ESS용으로 개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오하이오 공장 매각 대금 중 상당 부분도 이러한 생산 라인 전환과 ESS 전용 공장 증설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불확실한 전기차 시장에서는 자산(Asset)을 가볍게(Light) 가져가는 '에셋 라이트(Asset-Light)' 전략을 취하고 확실한 수익원인 ESS 시장에는 과감하게 자원을 투입해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선택이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4조 원의 현금을 얻은 대가로 치러야 할 기회비용과 리스크도 분명 존재한다.
가장 큰 우려는 고정비의 성격 변화다. 자가 공장일 때는 감가상각비로 처리되던 비용이 이제는 매달 현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임대료'가 된다. 공장 가동률이 높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만약 전기차 수요 부진이 길어져 공장이 멈춰 서더라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야 한다. 영업이익률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사업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ESS(에너지저장장치)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는 줄었지만 AI 데이터센터 등의 확대로 ESS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하이오 합작공장은 이제 '남의 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 공장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돌리고 싶어도 집주인인 혼다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다는 기본적으로 자사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원해서 공장을 지은 것이다. 만약 혼다가 "ESS 라인 전환 반대"를 외친다면 LG에너지솔루션은 유휴 라인을 놀리면서 임대료만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임대 계약 조건에 용도 변경이나 설비 개조에 대한 혼다 측의 동의 조항이 까다롭게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며 "혼다의 북미 전략이 수정되지 않는 한 LG 마음대로 라인을 운영하기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번 빅딜은 전기차 산업이 고속 성장기를 지나 옥석 가리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무조건적인 생산 능력 확장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존심 대신 실리를 택했다. '건물주' 타이틀을 버리고 '세입자'가 되면서까지 현금을 확보한 이 결단이, 향후 다가올 더 큰 위기(트럼프 리스크, 전기차 캐즘 장기화)를 넘기 위한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미래 수익성을 갉아먹는 악수가 될지는 2026년 미국 시장의 성적표가 말해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배터리 기업과 완성차 업체 간의 동맹 관계가 이제는 단순히 '같이 짓는' 단계를 넘어 서로의 재무적 리스크까지 떠안고 분담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북미 배터리 시장, LG에너지솔루션의 다음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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