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만들어진 IBM 천공카드 기계들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도입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기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IBM의 초기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 유물들은 창업주 토머스 왓슨 시니어를 상징한다.
이어 IBM 시스템/360 메인프레임 컴퓨터도 만날 수 있었다. IBM을 컴퓨터 회사로 완전히 바꿔놓은 이 컴퓨터는 아들 토머스 왓슨 주니어의 '작품'이다. 이 메인프레임이 있었기에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낼 수 있었다.
IBM을 컴퓨터 기업으로 이끈 토머스 왓슨 주니어의 자서전 표지. 이재용 삼성 회장은 왓슨 주니어의 경영 철학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창원 해군 사관학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삼성가(家)의 4세 이지호씨가 해군 학사장교(OCS) 훈련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는 것을 지켜봤다. 3개월 전 입소 당시와는 달리 당당한 모습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힘든 훈련을 이겨낸 자신감이 느껴졌다. 기자도 같은 길을 겪어 봤기에 이 소위가 어떤 훈련을 거쳤을지 알고 있다. 인정받는 리더가 됐다는 성취감은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다.
이 소위가 거친 파도를 이겨내야 하고 육상에 비해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해군의 길을 택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오히려 새로움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왓슨 주니어의 예에서 알 수 있다.
11월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이지호 신임 소위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왓슨 주니어는 평소의 꿈을 따라 군에 파일럿으로 입대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자본가라고 불리는 왓슨 주니어는 제대 후 아버지의 회사를 거부하고 민간항공기 조종사가 되려고 했다. 이 결정을 막은 것은 그가 가장 존경하던 군 상사였다. 상사는 왓슨 주니어가 군에서 터득한 지식을 가지고 기업에 복귀하라고 조언했다. 군에서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의미다. 왓슨 주니어의 군 경험과 상사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현대식 컴퓨터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지호 소위도 가문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장교로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고, 장차 삼성 가문의 장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을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닦을 기회를 얻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기자에게 "(아들이) 많이 배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왓슨 주니어처럼, 아들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축하기를 바라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리라.
전진은 멈출 수 없다. 왓슨 주니어는 "리더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 소위의 앞에도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항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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