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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든 말든 또 팔면 그만… '가짜 패딩' 사라지지 않는 까닭 [질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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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기자]

올겨울 패딩 시장에서 '가짜 구스'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 전반에서 유사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의심 없이 살 수 있는 패딩이 있는가'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가짜 구스' 논란이 올해만의 일은 아니란 점이다.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가짜 구스를 팔아도 크게 책임질 일이 없으니 '걸리든 말든 팔아대는' 거다.


겨울 패딩 시장 전반에서 충전재 정보를 부정확하게 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사진|뉴시스]

겨울 패딩 시장 전반에서 충전재 정보를 부정확하게 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사진|뉴시스]


"구스다운인 줄 알고 샀는데, 아니었다." 일명 '가짜 구스'가 올겨울 패딩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충전재 표기를 둘러싼 논란이 특정 브랜드를 넘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영원아웃도어가 운영하는 노스페이스가 있다. 노스페이스는 최근 자사 다운 제품 전반을 전수조사한 결과, 13개 제품에서 충전재 혼용률이 잘못 기재된 사실을 확인했다. 노스페이스는 3일 홈페이지에 안내문을 게시하고 "제품 정보가 잘못 기재된 기간에 문제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는 순차적으로 환불 절차를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가짜 구스 논란의 발단 = 이번 논란은 소비자의 문제 제기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를 통해 노스페이스 제품을 구매한 한 소비자가 충전재 표기에 의문을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문제의 패딩은 판매 페이지에 '우모羽毛(거위) 솜털 80%, 깃털 20%'라고 표기돼 있었지만 실제론 리사이클(재활용) 다운을 사용한 제품이었다. 노스페이스의 전수조사 결과도 사실 심각했다. 13개 제품 중 몇몇은 2년 가까이 실제와 다른 충전재 혼용률이 노출돼 있었다.


소비자단체 역시 이를 단순한 표기 오류를 넘어선 문제로 보고 있다. 노스페이스가 판매한 다운제품의 충전재 표기가 실제와 다르게 기재된 것을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 소비자 기만 행위'라고 판단한 한국소비자연맹은 12일 이 사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향후 집단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추가 대응도 검토 중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다운제품의 경우 거위털인지 오리털인지, 최초 사용인지 재사용인지 여부가 가격, 보온성, 내구성, 소비자 선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보"라며 "노스페이스는 소비자가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오인한 상태에서 구매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충전재 표기 논란이 노스페이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운 제품 시장 전반에서 충전재 정보를 부정확하게 표기한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패션 플랫폼에서 판매 중인 구스다운 제품 24개를 조사한 결과, 5개 제품은 거위털 함량이 KS 기준(거위털 80% 이상)에 미달하고, 2개 제품은 거위털을 사용했다고 표시했지만 실제론 오리털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솜털·깃털 구성 비율(조성혼합률)도 문제였다. 2개 제품은 실제 솜털 비율이 표시보다 낮았고 3개 제품은 조성혼합률 표시가 누락돼 있었다.[※참고: 이 조사는 최근 3년간 의류·섬유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150건 이상 접수된 패션 플랫폼 상위 4개 사업자(더블유컨셉·무신사·에이블리·지그재그)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9월 25일을 기준으로 각 플랫폼에서 '구스다운' 제품을 추천순으로 정렬한 뒤, 30만원 미만 제품을 선정해 시험·평가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발표 후, 문제의 제품을 제조한 업체들은 제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상품정보를 수정했다. 제품을 이미 구매한 소비자에게는 교환·환불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패션 플랫폼 업체들도 모니터링 강화, 페널티 부과, 환불 안내 등을 통해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다. 충전재 혼용률 문제가 사실 연례행사처럼 '반복적'이어서다. 실제로 2024~2025년 겨울 시즌에도 일부 브랜드 패딩 제품에서 충전재 혼용률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진 셈이다.


더욱이 충전재를 잘못 표기한 건 단순한 정보 오류로 보기 어렵다. 아웃도어 업계에서 거위털 100% 구스다운 패딩 가격은 50만~60만원대인 반면, 오리털 100% 패딩은 20만~30만원대로 가격 차이가 제법 크다. 충전재의 종류와 혼용률이 제품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만큼, 이를 잘못 표기하면 소비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 가짜 구스 반복 이유 =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사후 대응 중심의 관리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야 조사와 조치가 이뤄지는 방식에 빈틈이 있다는 거다.


실제로 현행 표시·광고 관련 법령은 거짓·과장 광고를 금지하고 핵심 정보를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표시광고법 3조와 4조), 해당 정보가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제품 유통 이전에 검증하는 절차는 없다.


혹여 '표시 오류'가 드러나더라도 기업이 책임져야 할 게 극히 적다는 것도 문제다. 판매 중단이나 환불, 정보 수정 등 사후 조치로 문제를 수습하면 그만이어서다. 그러다보니 관련 업계에 '먼저 팔고, 나중에 고친다'는 관행이 굳어진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사후 대응 중심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다운 제품의 충전재 혼용률처럼 가격과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정보는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품이 유통되기 전 단계에서 사실 여부를 걸러내는 사전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패션 플랫폼 중심의 유통 구조 역시 문제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상품 정보를 입력하고 판매를 중개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엔 제품에 하자가 있더라도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 현행법도 '상품 판매의 책임은 더블유컨셉·무신사·에이블리·지그재그 등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전자상거래법 제20조의2).


하지만 상당수 소비자는 플랫폼을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한다. 플랫폼의 브랜드 이미지, 할인·혜택 제공 등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패션 플랫폼은 단순한 중개자를 넘어 소비자의 선택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만,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플랫폼의 중개 역할과 소비자가 플랫폼에 갖는 신뢰를 고려하면, 이들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플랫폼의 상품정보 관리 시스템과 책임 구조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겨울철 패딩 가격은 매년 오르고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브랜드와 플랫폼, 제도 사이의 책임 공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겨울마다 같은 논란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언제쯤 '패딩'을 의심 없이 살 수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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