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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식품이야기] ⑫ 살이 오른다, 겨울 생선이여

프레시안 문상윤 기자(filmm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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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기자(filmmsy@naver.com)]
▲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수산물들의 맛과 영양기 가득해진다. ⓒ프레시안(문상윤)

▲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수산물들의 맛과 영양기 가득해진다. ⓒ프레시안(문상윤)


겨울 바다는 조용하면서도 풍성하다. 차가운 바람이 북서풍처럼 몰아치면 바다는 고요해지지만 그 내면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는 생물들의 리듬이 시작된다.

수온이 떨어지면서 생선들은 지방을 비축하고 그 결과 겨울철 수산물은 맛과 영양이 절정에 오른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겨울 방어’다.

방어는 전갱이과에 속하는 어류로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따라 이동하는 습성을 가진다. 여름에는 비교적 따뜻한 동중국해와 동해 쪽으로 이동했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남쪽 바다로 내려와 동중국해와 제주 해역에서 겨울을 난다. 이 시기 방어는 찬 수온 속에서 지방을 두텁게 축적해 살이 부드럽고 고소해진다. 그래서 겨울방어는 가장 맛있다는 공감대가 생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방어가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급어종’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사람이 즐겨 먹던 생선은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방어도 물론 잡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방어(일본식 이름 ‘buri’)는 오래 전부터 겨울에 지방이 많이 축적되는 시기를 중심으로 즐겨 먹혔고 축제와 지역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면이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겨울철의 ‘kan buri(寒ブリ), 추운 바다에서 잡힌 방어' 가 깊은 감칠맛과 풍부한 지방으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 방어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제주 모슬포항의 방어축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매년 11월 말이면 제주도 서귀포 모슬포항 일대에서는 겨울바다의 전령사처럼 돌아오는 방어를 기념하는 축제가 시작된다.

축제는 풍어제를 비롯해 방어 맨손 잡기, 무료 시식회, 지역 공연과 체험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며 단순한 ‘먹거리 행사’의 차원을 넘어 지역 문화와 여행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지역 축제는 단순히 방어를 많이 잡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에게 맛과 계절성을 알리고 지역경제와 관광을 촉진하는 기능을 했다. 사람들은 축제에 참여하면서 방어를 ‘겨울 대표 수산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 수요는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런 변화는 단순히 행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식 문화의 성장과 식당·매체의 확산과 맞물리면서 ‘제철 어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방어는 ‘겨울 방어 시즌’이라는 고유한 식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산업적으로도 방어를 겨울철 주요 메뉴로 홍보하며 소비자에게 계절의 맛을 상기시키는 것이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맛과 함께 방어가 주목받는 이유에는 영양적 가치도 있다. 겨울철 지방이 많이 올라 고소한 맛을 내는 방어의 지방에는 대부분 불포화지방산, 특히 DHA(도코사헥사엔산)와 EPA(에이코사펜타엔산)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이들은 혈중 중성지방을 낮추고 심혈관 건강을 돕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방어는 지방뿐 아니라 단백질, 비타민 D, B₁₂, 나이아신, 셀레늄 등의 영양소도 풍부해 겨울철 면역력과 건강 보완식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는 방어가 단순히 맛있는 생선을 넘어 ‘건강한 겨울식’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방어는 맛과 영양, 그리고 계절적 코드가 결합하면서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방어와 항상 비교되는 또 다른 생선이 있다.

바로 부시리다. 부시리와 방어는 외형이 비슷하고 같은 Seriola속에 속하는 친척 어종이지만 생태적 리듬과 맛의 계절성은 다르다. 부시리는 겨울보다 여름에 지방이 잘 차고 담백한 맛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름철 높은 수온 속에서 부시리는 근육이 단단해지고 균형 잡힌 감칠맛을 내며 방어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부시리가 늘 방어만큼 주목받지 못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름의 생소함과 식문화 속에서의 덜 알려진 지위가 있다. ‘방어’가 계절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지만 ‘부시리’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또 마케팅 측면에서도 부시리는 뚜렷한 계절적 축제나 캠페인이 부족했다. 그리고 식문화적 선호도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는 기름지고 부드러운 생선이 전통적으로 고급 맛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담백한 부시리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과 일부 해외 지역에서는 부시리(혹은 유사한 종)가 다양한 요리로 활용되며 점차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계절적 특성을 고려해 여름철 주요 어종으로 즐기는 시각도 늘고 있다.

겨울 수산물의 풍경을 이야기할 때 방어와 부시리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차가운 바다의 입김과 해풍을 온전히 품은 겨울의 별미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메기, 또 하나는 아귀다.

과메기는 단순히 한 생선 요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동해 겨울 바람이 완성한 발효와 건조의 예술이자 계절이 만든 식문화의 유산이다. 전통적으로는 청어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청어 어획량 감소로 인해 대부분 꽁치로 만들어진다.

잡은 꽁치를 내장만 제거하고 통째로 해풍에 수일간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해 말린 것이 과메기다. 이때 낮은 기온과 바람, 적절한 습도가 맞물리면서 살은 쫀득하게 숙성되고 기름기는 고소함으로 변해간다.

과메기는 단맛도 짠맛도 자극적이지 않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배어 나오는 감칠맛과 고소함, 그리고 씹을수록 깊어지는 질감이 일품이다.

신선한 미역이나 배추잎, 김 위에 과메기와 마늘, 고추, 초장을 얹어 쌈을 싸 먹는 그 순간 겨울이 주는 맛의 정수가 입안에 담긴다.

과메기는 단순한 수산물 가공품이 아니라 지역성과 계절감, 자연 발효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다. 그래서 경북 포항에서는 매년 ‘과메기 축제’가 열리고 이 지역에서는 겨울철 상차림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아귀는 생김새만 보면 결코 ‘귀한 생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피부에 납작한 몸매, 큰 입과 날카로운 이빨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고 심지어 기괴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껍질 아래 감춰진 담백하고 단단한 살과 진한 육즙은 아귀를 겨울철 최고의 흰살 생선으로 만들어 준다.

아귀는 예전엔 어부들이 잡아도 버리던 생선이었다. 손질이 까다롭고조리법을 알지 못했던 시절엔 상품가치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찜, 탕, 수육, 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며 특히 ‘아귀찜’은 매콤한 양념과 콩나물, 미나리의 식감이 어우러져 겨울철 인기 요리로 자리잡았다. 잘 찐 아귀는 쫄깃한 살결과 기름기 없는 단백함이 조화를 이루며 무거운 겨울 입맛을 개운하게 정리해준다.

무엇보다 아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위가 바로 간이다. 아귀간은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진한 맛을 지녀 ‘바다의 푸아그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백질과 비타민 A, 철분, 오메가-3 지방산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도 높다. 일본에서는 아귀간(안키모)을 고급 요리로 대접하며 겨울철 술안주나 요리의 하이라이트로 즐긴다.

이처럼 과메기와 아귀는 겨울이 아니면 쉽게 즐길 수 없는 수산물들이다. 해풍이 없으면 과메기는 완성되지 않고 차가운 수온 속에서 살이 오르지 않으면 아귀도 제맛을 내지 못한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겨울이 만든 요리이며 지역성과 계절성이 결합된 귀한 미각 자산이다.

겨울철 생선을 말할 때 단순히 맛이나 유행만 좇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연의 변화와 사람의 지혜로 만들어진 시간의 맛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방어의 기름진 부드러움, 부시리의 탄탄한 담백함, 과메기의 쫄깃한 발효, 아귀의 묵직한 단백함. 이 모든 것이 모여 겨울 바다의 식탁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완성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겨울은 단지 추운 계절이 아니다. 겨울은 자연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완성해낸 맛의 보고다.

찬 바람과 낮은 수온,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해풍, 그리고 그 안에서 견디며 맛을 채운 생물들. 겨울 바다의 풍경은 눈에 보이는 풍성함보다 훨씬 더 깊은 맛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점의 생선에도 계절의 리듬이 있고 한 접시의 음식 안에도 지역의 기억이 깃들어 있다. 지방이 차오른 방어, 여름을 기다리는 부시리, 해풍이 완성한 과메기, 그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귀까지. 모두 다른 맛이지만 이들은 함께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겨울 식탁을 입체적으로 채워준다.

우리가 계절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안의 즐거움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연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지역의 문화를 함께 나누는 삶의 태도가 숨어 있다.

바다는 늘 말없이 계절을 준비하고 우리는 그 계절의 맛을 조금씩 배워가며 먹는다. 그렇게 식탁 위에 놓인 겨울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삶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풍경이 된다.

[문상윤 기자(filmm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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