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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빛 펠트 위에 봉인한 도시의 비극…레아 벨루소비치 첫 한국전

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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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ui, R?publique centrafricaine, 25 juin 2025, Drawing with color pencil on wool felt , 45 x 35 cm *재판매 및 DB 금지

Bangui, R?publique centrafricaine, 25 juin 2025, Drawing with color pencil on wool felt , 45 x 35 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하얏트 호텔 안에 위치한 가나아트 남산은 프랑스 출신 작가 레아 벨루소비치(L?a Belooussovitch, 36)의 한국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재난과 군중, 그리고 이미지의 폭력성을 다뤄온 그의 작업 세계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현재 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벨루소비치는 뉴스와 보도 이미지 속 사회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유럽 현대미술계에서 빠르게 주목받아온 신진 작가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MAMC+), 벨기에 국립은행, 튀르키예 오메르 코치 컬렉션 등 주요 국공립·사립 컬렉션에 소장돼 있으며, 2018년 왈라니아-브뤼셀 연방 영 탤런트 상(Young Talents Prize)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드로잉은 모두 양모 펠트(wool felt) 위에 색연필로 작업됐다. 출품작의 제목은 도시명과 날짜로 구성되는데, 이는 실제로 발생한 대형 재난이나 비극적 사고의 시공간과 정확히 대응한다. 다만 화면 어디에도 사건의 직접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벨루소비치가 주목하는 것은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군중의 쏠림(Surge)’ 현상이다. 종교 행사, 스포츠 경기, 축제처럼 인파가 밀집되는 순간 벌어진 보도사진 속 가장 취약한 장면을 선택해 확대하고, 그 이미지에 깃든 색과 빛만을 추출해 양모 펠트 위에 은밀하게 쌓아 올린다.

이 과정에서 픽셀 단위로 선명하고 자극적인 원본 이미지는 해체된다. 작가의 수행적인 노동을 거쳐 수없이 중첩된 색연필 선들은, 밀집된 신체의 덩어리를 소용돌이치는 연기나 부유하는 구름처럼 변모시킨다. 구체적인 참상은 소거되고, 화면에는 추상적인 색의 안개만이 남는다.

레아 벨루소비치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레아 벨루소비치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가 선택한 양모 펠트 역시 단순한 바탕재가 아니다. 충격을 완화하고 열과 소리를 흡수해온 이 재료는 오랜 시간 보호와 보온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벨루소비치에게 펠트는 상처 입은 이미지들을 감싸 안는 치유의 지지체다. 펠트 위에 반복적으로 색을 입히는 행위는 폭력적 이미지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이자, 이미지의 탈(脫)폭력화를 시도하는 제스처다.


서로 다른 나라와 시간의 사건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보지 않고도 보게 만드는(voir sans voir)’ 힘을 지닌다. 비극의 형상은 사라졌지만, 색의 흐름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사건의 잔향을 환기한다. 이번 전시는 특정 사건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미지가 기억으로 침잠하는 방식을 묻는 명상이자, 타인의 고통을 소비해온 시각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2026년 2월 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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