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휴맥스해운항공 반영은 대표

2025년 을사년이 저물어간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아주 나쁜 해는 아니었다. 괜찮은 회사의 대표로 일했고 여름에는 백두산 천지도 다녀왔다. 8월15일 광복절에 오른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맑고 푸른 얼굴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참 좋았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60세 전후의 내 또래들이 대개 그렇듯 노쇠하신 부모님 걱정, 노후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직 완전히 내려놓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일터 사이에서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5년째 활동 중인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감사패를 보내온 것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게 된 터라 '과연 내가 이런 패를 받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꿈꾼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2026년을 며칠 앞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국가는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국심은 외국에 가면 더 강해진다는 말을 흔히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외국 땅에 도착하는 순간 그 나라 주류사회로부터 은근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느끼는 거리감과 차별이 우리의 정체성을 강하게 각인하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시선은 인종이나 성별, 출신에 따른 차별로 이어지고 더 극단으로 가면 왜곡된 민족주의,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비극적 역사로 귀결된다.

요즘 원화가치 하락을 둘러싼 걱정이 많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국민들이 '국가위기'라는 인식 아래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에 나섰다. 지금 비슷한 위기가 온다면 우리는 과연 같은 선택을 할까. 외환위기 이후 20여년이 흐른 지금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사이 더 심화한 빈부격차,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 과도한 사교육비가 일반 국민들을 생존의 문제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얼마 전 평소 존경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투자가 원화약세의 한 원인이라는 발언을 하며 청년들의 해외투자를 '힙한 트렌드'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현실의 절박함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 보여 아쉬웠다. 연애와 결혼, 내집 마련이라는 삶의 기본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경제적 부를 축적해야 하는 그들에게 해외투자는 유행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나는 차별과 배타적인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뉴욕에서 6년의 주재원 생활, 그리고 런던에서 석사과정 동안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직접 경험했다. 국내에서도 학연과 지연으로 패거리를 만들어 조직 전체의 이익을 사유화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 지역, 세대, 젠더갈등을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는 행태 역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런 이유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분출되는 과도한 애국주의에도 한 발짝 물러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국가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정체성의 틀이다.

과거와 지금의 국가는 분명 다르다. 예전에는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태어난 곳에서 살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개인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세금이나 정치제도를 이유로 국적을 바꾸는 스포츠 스타들의 이야기가 흔한 세상이다.

모든 것이 경쟁이 된 시대다. 개인간, 기업간, 그리고 국가간 경쟁 속에서 가장 치열한 것은 인재전쟁이다. 훌륭한 인재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나아가 다른 나라의 인재들이 이주해 살고 싶어하는 국가. 그것이 현대 국가의 경쟁력이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문화, 안정적인 주거와 교육, 신뢰할 수 있는 의료와 교통시스템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2026년의 대한민국이 그런 국가이기를 바란다. 개인에게 헌신을 요구하기 전에 개인이 이 나라에 머물고 싶어할 이유를 먼저 제시해주는 국가 말이다.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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