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논어 | 한형조 지음, 김영사(2025) |
핵심어는 경(敬)이었다. 경을 새긴 지팡이를 내리꽂자, 공자가 펼친 사유의 바다는 두 쪽으로 나뉘었다. 한형조는 ‘두 개의 논어’에서 대립하고 대결하는 두 사유를 긴박감 있게 비교하고 평가했다. 한쪽은 주자(12세기 중국 남송 철학자)의 경에 관한 해석이었다. 본디 경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적절한 예를 다하는 것과 일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를 뜻했다. 주자는 달리 해석했다. 본성을 자각하고 유전적 제약, 나르시시즘적 자기기만과 감정 편향 같은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아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일렀다. 주자가 유가철학의 고갱이를 우주의 공통된 가치인 ‘이(理)’라 본 까닭이다. 성즉리(性卽理)라 했으니, 맹자가 말한 성선을 우주적 규모로 확장한 것이 ‘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겠다.
주자에게 자기 수련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늘 각성된 집중 상태에서 살아야 했고, 이기적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억압된 본성의 자연성을 마침내 회복해야 했다. 이를 지은이는 자기 구원의 프로젝트라 하며 오늘의 언어로 명상이라 이름 지었다. 주자가 불교와 노장사상과 대결하면서 얻은 장대한 철학체계로 심학(心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군주가 덕성이 있으면 더 이상 적극적이고 의도적 행동 없이도 백성은 감화되고 정치는 통제되며 사회질서가 구현된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무위(無爲)의 정치학이다. 이 지점을 집요하게 공략한 것이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주자는 순진한 낙관주의자라며 맹공을 펼쳤다. 본성을 알고 회복한다고 하여 마땅한 이치를 늘 실천하지는 않는다. 윤리학의 난제라 할 의지박약을 주자는 간과했던 셈이다.
왼쪽부터 공자, 주희(주자), 다산 정약용.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겨레 자료사진 |
다산은 경을 내면적 정신의 집중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경과 맡은 일에 대한 책임(敬事)이라 해석했다. 유학의 덕은 관계 속의 공공적 태도를 일컫는다. 그러니 덕은 활용되어야 하고 정치나 사회에 참여해서 이익을 낳아야 한다. 자공이 말한 박시제중(博施濟衆), 그러니까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널리 베풀고 백성을 능히 가난과 곤경에서 건져내야 한다. 다산이 유가철학의 고갱이를 ‘서(恕)’라 말한 까닭이다.
다산은 조선의 혼란과 무능을 이겨내려면 지식인의 실천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은이가 다산의 사유를 정치적 행동이라 명명한 이유를 알 법하다. 다산은 정치에서 현실주의를 고취했고, 군사·재정·형벌 등의 실무적 영역을 존중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위(有爲)의 철학이며 실학이다. 특이한 것은 다산이 주자가 사망선고를 내린 ‘신(神)’을 복권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고 징벌하며 복을 주는 존재이기는 하나, 사제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철학은 주자와 마테오리치를 넘어선 지평을 목표로 삼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 ‘정치의 발견’이라는 다산의 관점을 확장해 나가다 보면 오규 소라이(1666~1728, 일본 에도 시대의 유학자)가 있는 지점인 도덕과 정치의 분리라는 난제를 만나게 된다.
두 거인의 맞대결을 두고 지은이는 판판이 다산의 편을 든다. 오랜 연구, 깊이 있는 사유, 그리고 유려한 문장이 빛나는 지은이의 이 평가는 받아들일 만한 걸까? 개인적으로는 ‘집기양단(執其兩端)’이라, 주자와 다산을 변증법적으로 통합시킨 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싶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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