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 책을 함께 지은 행복공장 노지향 원장, 김초롱씨, 임지영 기획자(왼쪽부터).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
한국에 은둔·고립 청년이 몇명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각종 사회조사 결과, 위기 징후가 보이는 청년이 54만명 정도 될 것이라 예상할 뿐이다. 은둔·고립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그들 마음속 이야기를 직접 접할 기회는 여전히 드물다.
‘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파람북)에는 6명의 은둔·고립 청년들과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자녀를 기다려온 2명 부모의 이야기가 함께 실렸다. 은둔부터 회복까지 다양한 경험을 지닌 청년들의 삶 전체 서사를 이토록 다채롭고도 온전히 보여주는 책은 흔치 않다. 이 책은 은둔이나 고립이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필사적 선택이었으며, 숨어 있는 건 살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었음을 드러낸다.
‘방구석이…’는 성찰과 나눔 프로그램으로 이름이 높은 비영리 사단법인 ‘행복공장’이 6년간 진행해 온 은둔 청년 회복 사업을 통해 나온 책이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면서 은둔·고립 청년들을 인터뷰한 제이(본명 임지영), 공저자로 참여한 당사자 김초롱(전 안무서운회사 이사)씨, 노지향 행복공장 원장을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 햅삐펭귄 프로젝트 지음, 파람북(2025) |
김초롱씨는 ‘방구석이…’를 두고 “당사자만 정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18살 때 처음 ‘방구석’에 고립됐다. 회복과 재고립을 거듭하며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청춘’의 한가운데를 관통한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죽음 문턱에서야 가족에게 겨우 상처를 이해받았고, 5년 전 행복공장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은 회복 과정을 거쳐 동료 치유자로 행복공장에서 일한다. 자기를 후벼파는 기나긴 나날을 통해 그는 은둔이나 고립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이고, 나아가 사회적 과제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은둔 청년’에 대한 콘텐츠가 공개되면 제일 많이 달리는 ‘악플’ 중에 하나가 ‘방구석이 좋아서 저러고 있는 거’라는 말인데요. 당사자 입장에서는 ‘우리가 방구석이 좋아서 이러고 있겠나’ 하는 느낌으로 좀 유쾌하게 우리끼리 제목을 정했어요. 제목 회의하는 자리에서 전원이 이거다, 라고 동의했죠.”
행복공장은 2009년 법조인 출신으로 사회운동가가 된 고 권용석(1963~2022) 설립자와 그의 배우자인 노 원장이 사재를 털어 넣고 뜻있는 사람들의 기부를 받아 설립했다. 이후 지금까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왔다. 노 원장은 소년원생, 교도소 재소자, 탈북민, 이주노동자 등 한국 사회가 끌어안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가슴속 실타래를 풀어내는 치유 연극 작업을 20년 넘게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보던 그의 눈에 은둔·고립 청년들을 위한 사업 공고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인 케이투와 고립 위기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등을 통해 당사자 청년들을 만나게 됐다.
‘내 안의 감옥’이라 이름 붙인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의 1인실 독방에서 청년들은 그동안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도록 한다. 프로그램은 명상, 선배와의 만남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초롱씨는 “진짜 혼자 쉬어본 적이 없구나, 생각했고 혼자 있어 보니 좋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치유 연극. 2013년 홍천수련원이 문을 연 뒤 이곳을 거쳐 간 6000여명의 지친 등을 어루만지면서 연극을 안내해 온 이가 노 원장이다. 반신반의하며 연극에 참여한 청년들이 무대에 올라 마침내 후련하게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책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지금까지 10~30대 청년들의 부모들을 합해서 총 500여명 정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 사업을 한 지 6년 정도 되었고 성과도 쌓였으니 제이가 책을 내자고 했어요. 그 순간이 너무 기뻤어요. 당사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추천사나 외고 필자들도 싫다고 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노지향)
주변 연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햅삐펭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백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인터뷰, 글 청탁, 원고 작성, 책 발간까지 모두 마쳐야 했다. 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기획을 성사시킨 제이는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홍보 마케팅 부서에서 일해온 전문가였다. 퇴사 후엔 7년 동안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인 푸르메재단에서 일하면서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하는 농장 ‘푸르메소셜팜’ 사업을 책임졌다. 그는 “은둔·고립 청년들을 만났을 때 인류 최초로 우주를 향했던 스푸트니크호에 실렸던 강아지 라이카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했다.
“라이카는 온순하고 참을성이 있었으며 영리했기에 선발되었다고 해요. 스트레스를 잘 참아냈기 때문에 좁은 곳에 갇혔던 라이카처럼 청년들이 은둔·고립한 시간도 그처럼 멀고 아득하고 막막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어 오히려 더 깊이 상처받기도 했더라고요.”
‘은둔’과 ‘고립’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은둔 청년들의 경우 최소한의 교류도 없는 상태를 뜻한다면, 고립 청년은 경제활동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최소한의 교류를 이어갈 수도 있다. 은둔과 고립 청년들을 한 범주에 묶어놓으면 은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상처를 받아 재고립되기도 한다. 노 원장은 “무조건 둘을 섞어놓거나, 덮어놓고 모두가 스펙 쌓고 자격증 따서 취업을 하면 문제가 한방에 해결될 거라고 믿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 히키코모리를 사회 의제로 만들었던 일본도 저질렀던 실수”라고 했다. 제이는 “표현에 서툰 ‘은둔’ 청년들은 좀 더 장기적인 인큐베이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셰어하우스에서 일상을 사는 법을 배우고 간단한 공공 근무를 통해 사회 속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천천히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라이카는 끝내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청년들은 돌아올 수 있잖아요. 공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제이)
동료들의 치유를 도와온 ‘은둔 고수’ 김초롱씨는 청년들을 위해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말했다.
“은둔의 계기는 백이면 백 모두가 달라요. 단지 한두가지 계기로 (방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쌓였다가 탁 터지는 결과인 만큼 회복에도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고요. 은둔청년들은 회복과 재고립 등 갈지자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천천히 회복과정을 거쳐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김초롱)
“언제든 도망갈 수도, 돌아올 수도 있는 느슨한 은둔 청년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그렇게 더불어 살아요. 무겁지 않게 웃으면서.”(노지향)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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