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메뉴판. 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교보문고, 2만2000원 |
1938년 미국 시카고 콩그레스호텔의 룸서비스 메뉴판에는 필수 비타민이 함유된 저칼로리 점심 메뉴가 올랐다. 비타민 비(B) 필수 섭취량을 충족한다고 광고한 420칼로리 메뉴가 메뉴판의 중심에 놓인 것은, 당시 영양 과학의 발전으로 외식업계에서도 건강식이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됐음을 보여준다. 이듬해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서방 국가들은 건강상의 이유만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맨다. 2차 대전 이후 1946년 캐나다 퍼시픽 철도의 식당칸에서 사용한 메뉴판에는 ‘고기 없는 날’이 등장한다.
우리는 거의 매일 식당에서 메뉴판을 손에 든다. 맛집에서 메뉴판을 읽어 내려가며 맛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미식’ 경험의 첫 단계다. 캐나다 맥길대 영문학과 교수인 나탈리 쿡은 ‘미식가의 메뉴판’에서 메뉴판이 단순히 요리를 나열한 목록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교차하는 문화적 기록물”이라고 설명한다. 메뉴판에는 음식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각은 물론 사회사까지도 반영한 단서들이 방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고를 음식이 없던 시절에는 메뉴판도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 들어 산업혁명의 여파로 기차 여행이 활발해지고 음식 문화가 발달하자, 우리가 아는 메뉴판이 탄생했다. 연회의 메뉴판 작업에 참여하는 게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명예로운 기회가 될 정도로 요식업계는 메뉴판에 공을 들였다.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댄스홀 ‘물랭 루주’의 댄서들만 그린 게 아니다. 굴과 사슴고기, 초콜릿 무스도 섬세히 그려나가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고객을 유혹하라’는 목적이 분명한 메뉴판은 그 시대 부와 계층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1901년 프랑스 여객선의 1등선 승객 메뉴판에는 ‘이국적’인 모습의 여성 종업원이 삽화로 등장해 불편한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냈다. 1930년대 구미의 철도회사들은 어린이 메뉴를 상세히 묘사한 메뉴판을 제공해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기 시작한 어린이 승객을 앞다퉈 유혹했다. 큐아르(QR) 코드 방식의 메뉴가 유행하며 메뉴판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오직 메뉴판이라는 사료만으로 시대의 풍경을 촘촘히 그려내는 저자의 힘이 탁월하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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