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엔딩 클럽. 조예은 지음, 위즈덤하우스(2024) |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 그 마지막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날들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인데도 우리는 시간의 흐름과 순환 속에서 늘 엇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 같다. 대개 이즈음에는 굳이 누가 시켜서 하거나 누굴 따라 하는 것도 아닌데 지난 한해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올해의 무엇’이란 이름을 붙여 특별한 매듭이 된 기억을 손꼽고, 다음 해에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길 은은히 혹은 간절히 바란다.
한해의 흐름은 지구의 공전이고, 하루의 흐름은 지구의 자전이다. 지동설 이후 인류에겐 더없이 간단명료한 과학적 사실이다. 이유를 알면서도 물리 법칙은 제쳐두고 철학적 사색에 잠기는 특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이와 좀 다른 면에서 재미나는 건 한달의 흐름이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1년이나 1일과 달리 1개월이란 시간은 밤하늘의 달로 감각된다. 초승달이 상현달로, 상현달이 보름달로, 보름달이 하현달로, 하현달이 그믐달로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한 달은 (단어 그대로) 달의 시간이다.
그러니 ‘초승달 엔딩 클럽’은 이상한 제목이다. ‘초승달’은 한 달의 ‘엔딩’이 아니라 ‘오프닝’이니까. 이 이야기가 이상한 제목을 갖는 이유는 이상하지 않고 슬프다. ‘엔딩 클럽’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제미, 수림, 환희가 이 세계의 삶을 끝내고 싶어 만든 모임이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뜨는 밤 생물실에서 잠이 들면 나타나는 괴물에게 순순히 머리를 디밀고 잡아먹히기 위해 이들은 함께 준비하기로 한다. 가정불화, 학교폭력, 아이돌 데뷔 실패라는 폭력적 상황에서 괴롭다 못해 자신이 싫어진 이들은 자기 삶을 게임처럼 리셋하고 싶어 한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끝내는 거야. 이번 판은 망한 게임이니까 그래도 돼”라고 여기면서.
‘엔딩 클럽’은 보름달이 뜨는 날을 디데이로 삼았으니 ‘보름달 엔딩 클럽’이어야겠지만 초승달이 뜨는 날 모임을 시작했어서 ‘초승달 엔딩 클럽’이 됐다. 초승달은 점점 커가는 달,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달이니 이들의 엔딩은 (당연하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생물실에 사는 괴물이 아이들을 잡아먹는 게임에 갇힌, 오랜 옛날 청소년이었던 이의 엔딩을 만들어내어 그를 구출한다. 게임이 엔딩되며 조각난 플로피디스크를 나누어 가진 엔딩클럽 멤버들은 서로를 보듬어 일으키며 스타팅 라인에 선다. 끝을 향해 달려가다 만난 여리고 불안한 존재들은 새 우정의 힘으로 끝 너머의 시작을 발견했다.
최근 몇년 사이 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불안하게 접하고 있다. 청소년이 살 만한 세계를 만들지 못한 자책감에서 기성세대라면 그 누구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태양이 지고 뜨듯, 달이 기울고 차듯 아직 시작인 너희의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주어진 삶을 끝까지 누리세요 두려워하며 기다리세요.”(송승언, ‘죽음 부흥 운동’, ‘시체공산주의’ 중에서)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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