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주관하는 ‘오프라 북클럽’에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두고 청중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2024년 12월3일 게시된 유튜브 갈무리 |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7)의 데뷔작 제목이 국내 처음 언급된 게 2023년이다. 1999년 단편집 ‘남극’ 이래 지금까지 5종만 출간된 키건의 작품 단행본 가운데 처음으로 ‘맡겨진 소녀’(2010, 키건의 말대로라면 “긴 단편”)가 국내 소개되면서였다. 이어 ‘가장 짧은 부커상 최종 후보’(2022)란 별호를 얻게 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1, 중편)과 단편집 2종이 번역 출간되더니 급기야 ‘남극’이 이달 국내 소개되었다. 3년 새, 키건의 25년치 전 작품이 한국어판을 장착하게 된 셈이다.
남극 l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다산책방, 1만8000원 |
‘맡겨진 소녀’에 이어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가장 뜨거운 국외 작가가 된 덕분이지만, 단편집이 중편만큼 주목을 끌기는 어려웠다. 15꼭지로 구성된 ‘남극’도 그럴지 모른다. 다만 키건의 원형질이 다양한 소재와 관점, 형식과 길이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작품이 아니라 때로 작가를 읽어가는 듯하다. ‘폭풍’을 먼저 꼽아보는 이유다. 모계로 이어지는 서사의 마력이 현시되니, 소곳한 한 여자아이의 마음에 곧 ‘폭풍’이 몰아치리라.
가난한 농가에서 네 자매를 키운 어머니. 몇해 전 다 내다 팔아 텅 빈 외양간 청소에 여전히 열심이다. 잃어버린 물건, 일어날 일 따위를 꿈에서 보곤 했던 어머니가 급기야 헛짓에 헛소리를 한다. 어머니 대신 일을 돕는 ‘나’의 주변엔 음침한 남자 일꾼들이 득실댄다. 아버지가 부러 위층에 내뒀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딸 손을 꼭 쥐고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다만, 동화가 전부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15년 동안 어머니를 멍들게 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주었”으니까. 아버지와 “똑같이 잔인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만큼 싫다”면서도. 아예 정신 병원에 수용된 어머니를 좀 더 자라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 나서는 ‘나’가 “어머니의 광기”와 어떻게 결부하는지 말미 몇 문장으로 간결히 도약하고 있으니, 6남매의 막내로 아일랜드 한 농가에서 나고 자란 키건이 작가로 나아가는 심상의 여로 같다.
“어머니의 정신 나간 소리”를 “오히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보았던 작중 ‘나’는 여성혐오, 성차별을 양식 삼는 가부장주의(‘남자와 여자’)와 그에 대조한 팜파탈적 양태(‘진저 로저스 설교’), 사랑 부재·왜곡의 파멸적 세계(‘남극’, ‘키 큰 풀숲의 사랑’, ‘여권 수프’)를 같은 단편집에서 횡단하고, 이후 4종에 또 누르고 눌러 예리하게 전해 온 키건과도 멀지 않다. 여성·약자의 ‘앞선 감지’로 최악을 대비하라는 ‘폭풍’의 메시지는 표제작 ‘남극’에서 고스란히 형상화한다. 그 절망의 지점으로부터 드물게 희망으로 나아가려 할 때, 작가는 그 벡터만큼 조금 더 문단을 삽입했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예다.
“(체호프의 편지에서) 두 지점 사이를 최소한으로 연결하는 움직임이 바로 우아함이라고 했어요. 그런 역동적 문체, 더불어 가볍고 절제된 표현에 저는 늘 매료됐죠. 제게 우아함이란 딱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입니다.”(2022년 부커상 쪽과의 인터뷰)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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