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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보다 176년 앞선 꿈, 한 여성 곤충학자의 삶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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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메리안 l 소피 아르츠 글·그림, 윤혜정 옮김, 초록귤, 1만6800원

마리아 메리안 l 소피 아르츠 글·그림, 윤혜정 옮김, 초록귤, 1만6800원


작고 쓸모없는 것에 매료될 수 있는 것은 유년기의 특권이다. 누구나 유년기에 한번쯤 개미나 잠자리, 애벌레를 오래 들여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 중 일부는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이 작은 우주에 더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보다 무려 176년 전에 태어나 돋보기를 들고 곤충을 살피며, 대서양까지 건너가 이들을 연구한 여성 생태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647년 독일에서 태어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은 그가 사랑한 반딧불이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만큼이나 환하고 신비롭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30년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린 마리아는 곤충의 소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에 깊이 빠져들었다. 마녀사냥의 광풍이 아직 거세던 시절이고, 대중은 곤충을 불결할 뿐 아니라 악마의 피조물이라고 여기던 때였다. 아직 계몽의 혜택을 받지 못한 어둠 속에서 마리아는 평범한 여성들처럼 결혼해 가정을 일궜지만,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앎’을 향한 불꽃을 감추지 못했다. 낮에는 아이를 키우고, 밤에는 곤충 연구를 이어갔다.



1679년, 마리아 메리안은 애벌레를 연구한 책을 펴냈다. 꽃 전문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꽃 그림책을 여러권 펴내긴 했지만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독특한 꽃 먹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곤충 연구사에서 처음으로 애벌레의 종류와 사는 곳을 소개한 책이다. 여성이 책을 쓴다는 것도, 연구를 한다는 것도, 모두 생경할 뿐 아니라 지탄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끝을 몰랐다. 쉰을 넘긴 나이에 마리아는 남아메리카 북부의 수리남으로 향했다. 후원자도 없이 대출을 받아 감행한 연구 여행이었다. 2년간의 수리남 여정에는 그의 딸 도로테아가 함께했다. 그곳에서의 연구물을 모아 마리아 메리안은 저서 ‘수리남 곤충의 변태’를 출간했다. 많은 여성의 꿈이 고치에 갇혀 피어나지 못하던 시절, 그는 스스로 고치를 뚫고 찬란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과학자이자 사업가, 화가이자 엄마였던 마리아의 삶은 담대한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책은 202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쉘프’에 선정됐다. 저자인 소피 아르츠는 마리아의 연구 노트에 영감을 받아, 그림은 물론 본문의 칸 배치와 글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해 책에 가치를 더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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