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쿠데타로 선출 정부를 축출한 군부 수장 민 아웅 흘라잉 대장이 지난 2021년 3월 27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군대 기념일 군 퍼레이드를 주재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2021년 2월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이끌던 민주 정부가 쿠데타로 축출되고 군부가 통치해 온 미얀마에서 28일 총선이 실시된다. 군부는 이번 선거를 국가 비상 체제를 끝내고 정상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야권과 시민사회가 와해된 상태에서 친군부 정당 후보들이 대거 출마·당선돼 군부 영구 집권의 기반을 다지는 ‘대관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선거는 28일과 다음 달 11일, 25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되며 660여 의원을 선출한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를 제외하고 단일 선거를 여러 날에 걸쳐 치르는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군부는 “여러 날에 걸쳐 단계적으로 치른 1951년 첫 선거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라고 했지만 ‘선거 결과를 군부에 유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쪼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의 투·개표 과정은 철저히 군부 통제하에 진행된다.
미얀마 헌법은 의회 의석수의 4분의 1을 군인에게 배정하도록 규정한다. 아웅산 수지가 이끌며 쿠데타 전까지 집권했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비롯한 주요 정당들이 군부에 강제 해산된 데다, 군부와 맞서 온 야권 연합 세력인 ‘국민통합정부’와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은 일찌감치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군부 우두머리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이번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대통령에 오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미얀마의 대통령은 총선이 끝나고 60일 이내에 의회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최근 그가 사복을 입고 공사 현장과 시장을 도는 ‘민생 행보’를 하고 있다”며 “군복을 벗고 대통령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전망했다.
AP 연합뉴스한때는 수지 여사와 악수 아웅산 수지(오른쪽)가 문민정부 출범을 앞둔 2015년 12월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 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
이런 일련의 상황 때문에 유엔은 일찌감치 이번 미얀마 선거를 부정 선거(sham election)로 규정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는 23일 성명에서 “군이 통제하는 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 대한 군부와 무장 세력의 협박과 억압이 가중되고 있다”며 군부를 직격했다. 토머스 앤드류스 유엔 미얀마 특별보고관도 지난 12일 성명에서 “무도한 군부가 자신들이 선거라고 묘사하는 사기극을 실행하기 위해 시민들을 더욱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며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들의 개입을 촉구했다.
미얀마의 현대사는 군부의 폭정→민주화 항쟁→군부의 유혈 진압의 악순환으로 점철돼왔다. 이런 악순환이 2015년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같은 해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의 NLD가 압승하면서 반세기 만에 첫 문민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지는 군부의 견제로 대통령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가고문 겸 외교장관이라는 직함으로 사실상 국정 1인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향력 축소를 두려워한 군부는 2020년 11월 선거도 NLD의 압승으로 끝나자 느닷없이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고 문민정부를 압박했고 이듬해 2월 쿠데타를 일으켜 문민정부를 전복했다.
군부는 76세의 아웅산 수지를 체포해 재판에 넘긴 뒤 코로나 방역법 위반, 무전기 불법 소지, 선거 조작 및 부패 등의 혐의로 총 27년을 선고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정치 생명을 완전히 끊기 위한 종신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는 쿠데타에 반대하고 문민 정부 복원을 요구하는 야권과 시민 단체·소수민족 무장 단체를 유혈 진압했다. 특히 반정부 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어린이·여성 등을 포함한 민간인들까지 무차별 공격하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국제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군부에 살해당한 민간인은 최소 7600여 명에 달한다.
미얀마 군부는 앞서 지난 8월 쿠데타를 일으키며 선포한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군부의 통치 조직인 국가행정위원회를 해산하며 선거를 준비해왔다. 이미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굳이 선거를 치르는 것에 대해 “건국 후 민주화 진영을 유혈 진압하면서 형성된 정통성 콤플렉스를 떨쳐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군부 인사들은 독립을 이끌고 나라의 기틀을 다진 주체로 국민에게 추앙받았다. 아웅산 수지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 역시 독립운동을 이끈 군부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1962년 독립의 주역 중 한 명인 네 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군부의 철권통치에 민주화 세력이 탄압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특히 군부가 도입한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경제 정책이 실패하고, 인권 탄압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가 잇따르면서 미얀마는 세계 최빈곤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서 압승해 민 아웅 흘라잉을 대통령에 올려놓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더라도 군부의 장악력은 이전보다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군부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소수민족 무장 단체와 민주화 세력이 연대해 전례 없는 저항에 맞닥뜨렸다. 2022~2023년에는 반정부 무장 세력에 연전연패하면서 군부가 장악한 도시와 기반 시설 상당수가 넘어가기도 했다. 다수의 동남아 안보 전문가는 현재 미얀마 국토에서 군부가 장악한 지역은 절반을 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