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 |
일단 정치인 출신인 김 이사장에겐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공단 본부가 있는 전주시 덕진구 혁신동은 김 이사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전주병에 속한다. 만일 2028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기반을 다지는 데 이사장 자리를 활용할 생각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벌써 정치권에선 김 이사장이 법률이 정한 임기 3년을 채우지 않고 중도 사퇴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6년 전에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기 만료를 10개월 남기고 중도 사퇴한 뒤 총선에 출마했던 전력이 있다. 공공기관장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이지 정치인이 선거 준비에 활용하라고 만들어준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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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에서 청년주택 해결 주장
국민 전체 노후자금인 국민연금
주택·외환 정책에 동원 자제하길
지난 17일 김 이사장의 취임사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는 취임사에서 자신의 ‘오래된 꿈’이라며 “국민연금은 심각한 주택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결혼을 미룬 청년들과 보금자리를 원하는 신혼부부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며 “적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는 재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의 취임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청년 주거난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다. 당연히 국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누군가에겐 ‘오래된 꿈’인지 몰라도 다수의 국민에겐 ‘끔찍한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적립금 총액은 1361조원에 이른다. 내년 정부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728조원)보다도 600조원 이상 많다. 정치인의 입장에선 이렇게 쌓인 돈으로 뭔가 생색이 나는 일을 벌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겠지만, 부디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제하고 또 자제하길 바란다. 앞으로 연금 가입자에게 줘야 할 돈을 따지면 심각하게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한 푼도 남지 않고 고갈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처리한 연금개혁안은 고갈 시기를 조금 늦추긴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소하진 못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48년을 고비로 국민연금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지면서 적자로 돌아서고 2065년에는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생이 나중에 65세가 돼서 노령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국민연금은 밑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얘기다.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연금 기금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다만 무조건 고수익을 노리는 게 정답은 아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고수익과 고위험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적정한 수준에서 투자 위험을 관리하면서 가급적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게 국민연금의 어려운 숙제다. 여기에 섣부른 정치적 계산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외환시장에선 정부가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방어하는 데 국민연금을 동원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공식적으로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동원론을 부인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를 확대하는 길을 열어놨다. 전략적 환헤지는 언젠가 원화가치가 상승(환율이 하락)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이는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민연금의 환차손 발생 위험은 줄어들지만, 동시에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축소된다. 경우에 따라 전략적 환헤지가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전략적 환헤지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하느냐다. 혹시라도 환율 안정이란 목표를 위해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위험천만이다. 국민연금은 특정 정권이나 진영이 마음대로 써도 좋은 쌈짓돈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귀중한 노후자금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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