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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우리생물] 돌아온 ‘하늘의 제왕’ 흰꼬리수리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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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계절, 국내외 대표적 겨울 철새도래지 중 하나인 경기 안산시 시화호에 가면 얼어붙은 수면 위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장면을 만날 수도 있다.

날개를 펼치면 2m가 넘는 위용을 자랑하는 새, 바로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흰꼬리수리(Haliaeetus albicilla)다. 매목 수리과에 속하는 대형 맹금류로, 몸 전체는 짙은 갈색이고 꼬리만 하얀색을 띠어 ‘흰꼬리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흰꼬리수리는 강과 호수, 해안가처럼 물이 있는 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예리한 시력과 발톱으로 어류뿐 아니라 조류, 포유류까지 사냥한다. 현재 멸종위기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관찰되지만, 일부는 연중 국내에 머물기도 한다.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이들의 번식 사례는 2000년 전남 신안군 흑산도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2024년 6월, 무려 24년 만에 경기 안산시 시화호 인근 야산에서 흰꼬리수리가 번식을 시도해 건강한 새끼를 성공적으로 길러낸 사례가 보고되었다.

필자가 지난 2월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겨울 철새 총조사인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위해 시화호를 찾았을 때 송전탑 위에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는 흰꼬리수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뒤 다시 찾은 현장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둥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을 뿐, 기대했던 수리 가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언론을 통해 일부 무분별한 사진가들이 이들의 둥지에 무리한 근접 촬영을 강행함으로써 이들의 번식이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20여 년간 단 두 번만의 국내 번식 기록을 가진 멸종위기종의 소중한 생명 탄생의 기회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너무도 허무하게 무산된 것이다.

때로 자연은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의 기적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적을 마주하려면 조용히 기다리고 지켜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언젠가 흰꼬리수리가 다시 시화호로 돌아와 둥지를 짓는다면 이번에는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그들의 생태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연 국립생물자원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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