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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실용 정부의 불안한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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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자신을 ‘실용 정부’라 부르며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환경·에너지 정책에서 감지되는 신호들은 그 실용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더는 미뤄둘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하나의 전환 전략으로 묶이기보다 조각난 채 따로 논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합성의 약화와 공공성의 후퇴로 연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송전망이 그렇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말하며 대규모 송전망 확충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민간 자본을 활용한 펀드도 검토하겠단다. 문제는 전력망이 단순히 투자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송전망은 국가에너지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고,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식의 에너지가 생산·소비될 것인지 좌우하는 공공 정책 수단이다. 민간 자본이 개입된 송전망은 필연적으로 수익성을 요구한다. 송전망 건설의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지역 수용성, 분산형 에너지 전환, 생태 훼손 최소화라는 기준이 아니라 투자비 회수 가능성에 종속시킬 위험이 크다. 이미 우리는 민자 도로와 민자 철도를 통해 ‘재정 부담 완화’라는 명분이 어떻게 장기적 공공 비용 증가로 귀결되는지 경험했다. 송전망을 둘러싼 민영화 우회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축을 시장 논리에 내맡기는 결정이며, 전환 속도를 높이기보다 갈등과 비용을 증폭시킬 것이다.

보호지역에서도 유사한 불안정성이 감지된다. 정부는 규제는 완화하되 보호 강도는 높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호지역 정책에서 규제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핵심이다. 보호지역은 관리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 요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규제 완화는 곧 개발 가능성 확대로 연결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보호지역의 실효성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도 법적 보호 수준과 개발 차단의 명확성이다. 한국의 보호지역은 이미 각종 예외 조항으로 실질 보호율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규제 완화를 전제한 보호 정책은 보호지역을 생태계 보전의 최후 보루가 아니라 조정 가능한 개발 공간으로 전락시킨다.

플라스틱은 정합성 붕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정부는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을 제시한다지만 정작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재활용률 제고, 분리배출 개선, 친환경 소재 전환 등은 이미 수차례 반복돼온 정책 메뉴다. 국제사회에서는 플라스틱 문제의 핵심이 폐기물 관리가 아니라 생산 총량에 있다는 점이 명확히 합의되고 있다. 논의 중인 국제 플라스틱 협약도 생산 규제가 핵심이다. 플라스틱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산업 정책과 직결된다. 감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생산 구조를 외면하는 것은 정책적 책임 회피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 환경·에너지 정책의 문제는 기준의 부재다. 개별 목표는 존재하지만 공공성, 예방, 오염자 책임, 생태적 한계 등 관통하는 원칙이 없다. 그 빈자리를 투자 논리와 관리 효율이라는 단어가 메운다. 기준 없는 실용은 결국 전환을 지연시키는 가장 비실용적인 선택이다. 실용은 타협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기후·생태위기 시대의 실용은 구조를 건드리는 용기이며,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는 정치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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