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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불안 넘어 무력감···그럼에도, 손 내미는 이 있어 살아낸다[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②]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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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가파른 선이 그어졌다. 지난 5년 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를 표시한 그래프 맨 위를 가로지른 2개의 선은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이었다. 이들의 우울증 진료 건수는 같은 세대 남성보다 매년 약 2배 많았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10대 여성이었다. 3개의 선이 한 곳을 향하듯 높이 뻗어갔다. 그 끝이 어디였을까.

또 하나의 높고 가파른 선이 그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망통계 등을 분석한 연구 결과 한국 사회 20~39세 여성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이들의 자살률이 2016년 이후 매년 8% 이상 급증하는 동안 전세계 여성 청년 자살률엔 큰 변동이 없었다. 한국 여성 청년을 가리키는 선만이 고요히 질주하듯 솟구쳤다.

우울증이 반드시 자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성 청년의 우울은 양상이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남성 청년의 자살엔 실직 등 경제적 요인이, 여성 청년의 자살엔 우울감 같은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여성 청년의 우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축적되는지 살펴보지 않고선 이 ‘조용한 학살’을 설명하기 어렵다.

경향신문은 우울증을 겪어온 10~30대 여성 28명을 인터뷰했다. 서울·경기·충청·제주 등 각지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여성들이 서로 닮은 감정을 느끼며 자라왔다. 이들에게 우울은 일회적 감정이 아닌 살아오는 동안 지속하는 과정이었다. ‘우울’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생애 과정을 다시 그려봤다. 28개의 삶이 교차하는 자리에 두드러진 한국 사회 민낯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 기사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수 있어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합니다.
※본 회차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이름은 가명·활동명·본명 등이 섞여 있습니다. 익명의 경우 1회와 동일 인물로 알파벳순이 아님을 밝힙니다.


목차
①죽고 싶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
②살기로 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니까


여성 우울증 당사자인 I씨(26)가  지난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여성 우울증 당사자인 I씨(26)가 지난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해 3월 E씨(23)는 새벽에 수영을 하러나가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 빠진 타이어를 끌고 다니는 자전거”처럼 E씨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까지 갈 수도 없어 바닥에 누워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울었다. 글은 읽히지 않았고 좋아하던 야구중계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순히 지친 거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1년여가 흐른 지난 5월 E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 죽고 싶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쌓인 상처가 만든 ‘조용한 학살’[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①]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211843001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는 당신에게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E씨가 겪었듯, 우울증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은 우울증을 ‘참으면 나을 수 있는 가벼운 병’으로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우울은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다. 이들은 우울을 “가슴에 두려움에 떠는 돌덩이가 얹혀 있는 느낌”(K씨·23), “근육이 사라지는 느낌”(H씨·29), “공기가 끈적한 꿀 같은 느낌”(D씨·32) 등으로 표현했다. E씨가 바닥에서 침대까지 갈 수 없었듯, 우울이 찾아오면 “머리도 감을 수 없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태”(I씨·26)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극심한 충동이 오면 “칼로 가슴을 찢어내고 싶은 감정”(B씨·32), “죽고 싶단 감정이 강렬해 이성을 지배하는 느낌”(Q씨·17), “초조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A씨·20)을 느꼈다. 여성들은 “우울은 그냥 훌쩍이다가 맛있는 걸 사 먹고 잊는 정도의 감정이 아니다”(D씨)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통은 질병으로 이해되기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들은 ‘호르몬 때문에’, ‘예민해서’, ‘나약해서’ 등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성격 문제로 우울이 환원되는 경험을 겪었다. 우울증·공황장애 등을 진단받은 A씨는 자신의 병을 증명하려고 진단서를 받아 부모에게 보여줬지만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 “오버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폭력으로 느끼는 자살 충동을 가볍게 여기는 경찰의 태도”(O씨·25), “내가 느끼는 우울이 구조적 문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상담사”(N씨·25) 등 우울을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는 주변의 태도는 상처로 남았다.

여성 우울증 당사자인 I씨(26)의 가방에 약봉지가 들어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여성 우울증 당사자인 I씨(26)의 가방에 약봉지가 들어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이들은 여성의 우울이 ‘구조적 고통’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높은 청년 자살률을 낮추려고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은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난히 많은 여성 청년의 우울증에 관해 국가 차원의 연구를 하거나 대책을 마련한 적은 없다. 한국과 달리 호주에선 젊은 여성의 자해·자살 시도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이를 ‘아동기의 학대·친밀한 관계의 파트너 폭력으로 인한 자살 시도’로 분석하고 ‘국가 자살 예방 전략(2025~2035)’에 반영하기도 했다.

수빈은 “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에게 사회는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 너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며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비난받는 게 두려워 병세가 심해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은 “정부도 사회도 여성의 우울증과 자살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여성 집단에서 유난히 높은 우울증과 급증하는 자살률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그에 맞춘 상담과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의 일’엔 침묵하는 세상에게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상담·치료 체계의 구축은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 역시 경제적 지원과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일자리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체계만으로는 여성의 우울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계속되는 한 우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10~30대 여성들은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리부트’(페미니즘 대중화)를 경험한 세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성폭력을 공론화한 ‘미투’ 운동, 2020년 실태가 드러난 성착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만연한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 문제가 부각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동)도 거셌다. 정치권은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 광장에서 등장한 ‘응원봉 여성들’은 이러한 백래시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광장에 힘입어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도 “특정 부분에서 남성 차별을 연구하라”고 말하는 등 여성 의제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계엄 사태 이후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에서 탄핵 집회를 주도했던 2030 여성들의 얼굴을 모아 응원봉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문재원 기자

계엄 사태 이후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에서 탄핵 집회를 주도했던 2030 여성들의 얼굴을 모아 응원봉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문재원 기자


정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보며 여성들은 분노·불안을 넘어 무력감을 느꼈다. 여성들은 “대통령이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할 때”(O씨), “채용 성차별을 한 기업이 벌금형에 그칠 때”(여름), “여성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끊임없이 접할 때”(윤), 사회로부터 “너희가 아무리 죽어도 우리는 바뀌지 않는다. 너희 목숨은 하찮다”(윤), “아무리 외쳐도 무시당할 것이다”(H씨)와 같은 메시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돌리기도 했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나 역시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A씨), “사회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고통”(L씨·24)은 여성들의 우울감을 키웠다.


여성들은 “성범죄에 대한 온당한 처벌”(8명),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 대책”(9명)이 있어야 우울증도 옅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논쟁 대상’, ‘해석의 영역’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은 “한국 사회는 여성 차별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며 “국가도 사회도 그 누구도 여성인 나를 사람으로 바라봐주지 않고 존중해주지 않는데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화된 무력감’이야말로 조용한 학살의 시작”이라며 “차별과 폭력에 대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우울이 파도처럼 덮치는 순간에도 여성들은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죽고 싶었지만 동시에 살아남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여성들의 삶은 때로 우울에 먹히고 잠겼지만 이들은 우울을 다루고 우울에 맞서고 우울에 함께하기도 했다.

M씨(36)는 우울이 찾아왔을 때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침을 만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다 충동이 느껴지면 즉시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30분 후에도 가라앉지 않으면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건다. 그 후에도 충동이 지속되면 응급실에 간다. M씨는 “병을 다루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며 “이제 곧 (우울과) 20주년을 맞는다”며 웃었다. 다른 여성들은 노래를 듣거나(P씨·10대), 글을 쓰거나 읽고(I씨·26), 숨이 턱 끝까지 찰 때까지 달리거나(윤), 손목에 고무줄을 튕겨(규영) 충동을 억누르는 등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이들이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을 때까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I씨는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다가 극심한 불안과 충동에 휩싸여 자해했다. I씨는 친구에게 연락했고, 친구는 곧바로 달려와 상처를 치료하고 밥을 사줬다. “‘우리 죽지 않기로 약속하자’던 친구들의 말”(N씨), “돈이 없을 때 도와준 친구들”(수풀·M씨), “한강에 몸을 던지려 했을 때 역까지 데려다준 동네 방위대 분들”(O씨),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과의 연대”(자유별) 덕분에 여성들은 죽지 않았고,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죽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살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규영)고.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N씨), 늦더라도 언젠가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G씨), 이 세상은 내가 한바탕 즐기고 지나갈 세계라는 마음으로(R씨)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아직은 “살아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A씨)고. 자신을 해치게 하고 지치게 하고 때론 더 힘써 지키게 했던 우울과 함께, 여성들은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우울한 여성들이 우울한 여성에게 전하는 말

죽지 마세요. -I씨

일단 1초라도 살아있으려고 해주세요. 살아있을 때만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L씨

저부터 잘 안 되고 있어서 우습지만, 그래도 살으라고 하고 싶어요. -K씨

이 고통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한 가해자라고 해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명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력함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환기하며 고통 속에서라도 계속해서 살아있으려는 의욕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우울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를 탐구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들입니다. -찬호

우리가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게 아니라, 기질과 겪은 경험들에 따라 걸릴 수밖에 없었던 거니까 자책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다만 일어나려고 같이 노력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노을

당신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꼭 나아질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힘이에요. 우리가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우리가 못 하는 것은 없어요. 하고 싶은 거를 꼭 해요. 그게 나아질 방법이에요. 하고 싶은 것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요. 우리는 꼭 나아질 거니까 그 가능성을 믿어요. -수빈

김숨 소설가의 책 <너는 너로 살고 있니>의 일부를 인용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낮은 삶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만이 있을 뿐이지요.” -나형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덜 힘든 것, 조금 더 쉬운 것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에너지가 생기면 조금 더 멀리 가보면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원망하지 않아요. 다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규영

2023년에 제가 일기에 쓴 글이 있습니다. ‘긴 슬픔을 짧은 슬픔으로, 짧은 기쁨을 긴 기쁨으로.’ 슬픔과 기쁨의 영원한 교차는 인간의 삶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얼마나 느낄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J씨

우울을 터널로 비유하지만 사실 터널에 끝이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희망적인 말이 와닿지 않을 때도 많겠죠. 하지만 오늘 양치라도 한 번 했다면 그건 해냈다는 뜻이고, 스스로에게 다정했다는 증거예요. 그러니 조금 더 힘을 빼도 되고 자신에게 다정해도 됩니다.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B씨

삶이 무기력하고 사는 이유를 모르겠고 지치고 괴롭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지 하다가도 원점인 것 같고. 쳇바퀴를 의미 없이 도는 것만 같아도 어찌 됐든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요. 당연하고 진부한 말일지 몰라도 시간이라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탈출 구멍을 하나 뚫어 놓고 지칠 때면 숨을 돌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그런 숨구멍 하나가 정말 큰 역할을 하더라고요. 잠깐 쉰다고 해서 인생에 빈틈이 생긴다는 생각은 말았으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씨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내주세요. 잡지 않으셔도 됩니다. -R씨

살아있다는 것에 수치심을 버리기 어렵다는 걸 알아요. 좌절 대신 차라리 화를 내세요. 제발 죽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점점 사라져서 쓸쓸하고 화나요. 어떻게든 도움 받아서 살 수 있으니까 제발 죽지 마세요. -M씨

병원을 가세요. 그리고 남 탓을 하십시오. -H씨

받아들여야죠. -멍

우울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토악질 나오는 현실에 쉽게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의지요. 저는 그 고고함을 응원합니다. -O씨

‘나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모두 하실 것 같아요. 말해도 안 들릴 수 있겠지만 해보면 별거 아니니까 한번 가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터뷰에 나서주신 여성분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 괜찮다는 것. 그걸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E씨

증상은 다 다를 테니 맞는 병원을 찾는 건 어렵고 힘들 거예요. 그래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금 더 멀리 보고 병원 꼬박꼬박 잘 다니시고 약 잘 드시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능력이 없다’는 둥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말은 듣지 마세요. 단지 지금 내가 아프다는 걸, 누구도 아플 땐 자기 자신이 되기 어렵다는 걸 인지했으면 해요. -D씨

생계비가 부족하신 분들은 꼭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를 알아보고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알아보는 것도, 주민센터까지 가는 길도 너무 괴로운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괴로운 것은 그만큼 내 몸이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월 8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이 돈이 어떤 희망을 갖게 해주는 걸 알기 때문에 여러분도 상담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물론 저는 지금도 완전히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나의 고통은 정당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수풀

약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주변에 의지할 만한 여성 친구들도 많이 만들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기도할게요. -윤

한국만이 여러분이 사는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넓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은 분명히 있어요.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는 수단을 최대한 활용해보셨으면 해요. -자유별

내가 살았으니 당신도 살 수 있습니다. 확률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시고 부디 살아주세요. -C씨

세상은 살아가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정신병이 있는 사람’으로 안 좋게 보고, 가족들은 제게 의지가 부족하다면서 화를 내고,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 것 같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친구도 지인도 없고 가족도 곁에 있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걱정되신다면 각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센터 혹은 24시간 상담전화, 청소년을 위한 센터에 속는 셈 치고 딱 한 번이라도 얘기를 남겨보셨으면 해요. 글로 쓰기 어렵다면 휴대폰으로 녹화하셔도 좋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내 입장과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다 보면 저처럼 무언가 한 글자라도 쓰실 수 있으실 거예요. 처음부터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저 또한 10년도 넘는 시절을 말도 못 하고 혼자 앓고 지내왔기 때문에 ‘용기’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잘못됐다고 하는데 내가 진짜 잘못한 걸까?’ 이런 생각은 당연해요. 하지만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구구절절한 제 말이 불편하고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도, 날이 좋으니까 하루 더, 햇살이 따뜻하니까 하루 더, 그다음엔 어떤 핑계를 가져와서라도 살아봐요. 그렇게 살다 보면 하루 정도는 더 살만한 이유가 생길 거예요.
기댈 곳이 없다면 저라도 좋아요. 언제든 좋아요. 당신은 살아 마땅한 사람이니까요. -G씨

SNS에서 종종 ‘여자들아 살아만 있어라’란 말이 도는데요. 저는 저 자신을 그토록 잃고 싶어하면서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성들은 잃고 싶지 않아요. 자살을 희망하는 저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서 들은 ‘살아만 있으라’는 말 때문인지 유감스럽게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저는 다시 저를 세상에서 지우고 싶어하겠지만···그럼에도 전할 말은 역시 이것입니다. 여자들아, 살아만 있자. -여름

때론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누가 제발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랄 때도 있죠. 그래서 해줄 말이 사실은 없어요. 그냥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N씨

주변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잘 나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환경이라면 최대한 주변 도움을 구하고 어떻게든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준비를 해보셨으면 해요. 상담도 잘 받으시고요. 감정 환기를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마음으로 상담을 받아보시면 좋겠습니다. -F씨

이겨내세요. 죽지 못하는 이유보단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만드세요. 그 누가 당신의 편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제가 당신을 끝까지 응원하세요. 당신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P씨

우리 같이 살아요. -A씨


<시리즈 끝>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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