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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에도 있다…사이코패스 많은 직업 1위는 CEO[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동아일보 손효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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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영업부 K부장은 직원들에게 “실적이 떨어지면 정리해고 대상이 될지 몰라”라고 자주 말했다. 인사팀과의 친분을 암시하며 “슬슬 누굴 내보낼지 고민이더라”는 말도 흘렸다. 직원들은 두려움에 시달리며 경쟁적으로 일했다. K부장은 부드러운 태도로 직원들을 대했지만 작은 실수라도 하면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며 불안감을 부추겼다. 직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병가를 냈고 신입 사원들은 얼마 못 가 퇴사했다.

이는 실제 사례로 K부장은 공포가 최고의 동기 부여임을 확신하고 이를 활용해 성과를 냈다.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다크 심리학(Dark Psychology)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탐구해 타인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설득하는 기술을 융합한 것으로, 심리학계의 정식 용어는 아니다.

어센딩 출판사에서 출간한 ‘다크 심리학’은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분석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았다. ‘다크 심리학’은 올해 7월 출간한 후 3개월 만에 10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저자로 표기된 ‘다크사이드 프로젝트’에는 박용남 씨(46)와 주원 씨(35), 또 다른 한 명이 참여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범죄행동분석관 송하영(김남길·왼쪽)은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으며 사건을 해결한다. SBS 제공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범죄행동분석관 송하영(김남길·왼쪽)은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으며 사건을 해결한다. SBS 제공


손힘찬 어센딩 출판사 대표(30)를 3일 전화 인터뷰했다. 손 대표는 30만 권 넘게 판매된 에세이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2018년)를 비롯해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2021년)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손 대표는 “글을 쓰면서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다 지난해 어센딩 출판사를 설립했다. 어센딩에서 낸 다섯 번째 책이 ‘다크 심리학’인데 이렇게 호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책의 시작은 박 작가의 소셜 미디어였다. 박 작가가 다크 심리학과 관련된 내용을 올리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손 대표는 박 작가와 ‘어른의 기분관리법: 심리학편’(2025년)을 함께 집필하며 인연을 맺었다.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박 작가는 심리상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 다크 심리학을 알게 됐는데요, 미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다크 심리학에 열광하는지 의아했어요. 그래서 책으로 출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죠.”

‘다크 심리학’ 책표지.                  어센딩 제공

‘다크 심리학’ 책표지. 어센딩 제공


다크 심리학은 2002년 심리학자 델로이 파울러스, 케비 윌리엄스가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라는 용어를 논문에 처음 사용하면서 나왔다. 다크 트라이어드는 인간 심리의 어두운 부분 중에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즘의 세 가지 성향이 모인 집합이다. 모두 ‘자기중심적 사고를 추구하고 타인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작가가 글을 쓰면 마케터로 일한 주 작가가 이를 가독성 높게 정리했다. “국내에는 다크 심리학을 다룬 책이나 자료가 없어서 참고할 게 없었어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죠. 저자들은 원고를 계속 주고받으며 써 나갔어요. 담당 편집자는 20년간 편집 업무를 했는데도 ‘작업 난도가 너무 높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출판사 직원은 손 대표를 포함해 4명으로, 다같이 책 만들기에 매달렸다. “내용이 다소 어둡고 ‘음지스러워서’ 목차를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독자의 흥미를 끄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크 심리학을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책에서는 감정 교란, 고립화, 피해자 프레임 설정 등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유형들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대처법을 말한다. 가령 상대방이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감정을 교란시키고 시간을 끌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면 이를 역으로 이용하라고 한다. 일단 협상을 할 때 대화를 빨리 끝내야 한다. 혼란을 야기하려는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길 정도로 차분하게 행동해야 한다. 평소 5분 안에 답했다면 한참 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24시간 뒤에 ‘이건 다음 회의에서 다뤄요’라고 짧은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은 궁금해 하고 초조해진다고 설명한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위)는 아내마저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원하는 바를 거머쥔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위)는 아내마저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원하는 바를 거머쥔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책은 소장욕을 자극하기 위해 양장본으로 만들었다. 검은색 바탕에 은박으로 제목과 저자만 표기했다. 두꺼운 종이를 사용해 책장을 넘길 때 빳빳한 촉감이 느껴지고 빨리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은 읽는 재미도 있지만 장식의 기능도 있어요. 고급스럽게 만들면 가격에 상관없이 구매하더라고요. ‘다크 심리학’은 서점에서 살펴보다 사는 독자들이 상당수예요. 실제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남성 독자의 비중이 높은 것도 눈에 띈다. “독자 중 남성의 비율이 60% 정도 됩니다. 20대부터 40대가 많고요. 교보문고에 따르면 책이 출간된 초반에 구매자 중 2030 남성의 비중이 60%나 됐어요.”

마케팅은 쉽지 않았다. 저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책을 알렸다. 출판사 차원에선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들을 대상으로 유료 광고를 요청했지만 절반 이상이 거절했다고 한다. “책을 다루는 유튜버들은 고전이나 검증된 저자의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크 심리학’은 내용을 비롯해 여러 모로 비주류에 속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최명기 원장님은 다크 심리학에 대해 ‘세속 심리학’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채널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죠. 한편으론 저희가 요청하기 전에 ‘다크 심리학’을 소개해주신 유튜버도 있었어요. 이런 엇갈린 반응을 보면서 책 판매는 ‘모 아니면 도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책 자체의 힘으로 계속 빠르게 판매되고 있다. 손 대표는 인기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크 트라이어드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친애하는 X‘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 사이코패스 등이 자주 등장하니까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가스라이팅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오니까 더 알고 싶어하고요. 실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욕구도 큰 것 같습니다.”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모두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영국 심리학자 케빈 더튼이 2012년 영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이코패스가 많은 직업 1위는 최고경영자(CEO)였다. 2위는 변호사, 3위는 연예인 4위는 영업사원이었다. 이어 외과의사, 기자, 경찰관, 성직자, 요리사, 공무원 순이었다. 많은 사이코패스가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조용히 권력을 쥐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세상에는 ‘정상인의 껍데기’를 쓰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이코패스가 있고, 반대로 냉혹한 기질을 활용해 오히려 사회적 선(善)을 이루는 사이코패스도 있다고 말한다.

‘다크 심리학’은 출판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효자책’이 됐다. “이번 책도 안 되면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일을 좋아해서 계속 하겠지만 지금처럼 전업으로 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다크 심리학’이 어센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히트 친 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죠.(웃음)”

‘다크 심리학’ 후속책인 ‘다크 심리학2’도 다음달에 낼 예정이다. “‘다크 심리학’이 입문서 역할을 했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권력과 범죄 심리학을 중심으로 다뤄요. 시리즈로 책을 계속 낼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다크 심리학’(어센딩·2025년)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탐구해 타인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설득하는 기술을 융합한 다크 심리학을 소개하고,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심리상담가 박용남 씨와 마케터 주원 씨 등 3명이 ‘다크사이드 프로젝트’를 결성해 함께 썼다. 다크 심리학은 심리학계의 정식 용어는 아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자기애가 지나쳐 타인을 심리적으로 통제하려는 나르시시스트를 어둠의 3요소로 꼽는다. 이런 세 성향이 결합된 게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다.

이들이 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스트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적 위장 능력, 철저한 감정 통제로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들은 타인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짚으며 대처법을 제시한다. 거짓 소문과 정보 왜곡으로 자신을 고립시킬 경우 정보와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 지금 느끼는 두려움과 배신감이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감정에 휩쓸리는 걸 늦출 수 있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게 맞는지도 의심해 봐야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작은 호의를 표현해 보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호의를 베풀어 원하는 걸 얻어내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끊임없는 호의를 베푼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피해자 행세를 하며 이런 저런 요구를 한다면 세 가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상대의 고통은 내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며 △내가 준 적 없는 빚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거절은 공격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권리다.

피로하면 판단을 남에게 맡기고 작은 호의도 과대평가하게 된다. 복종적으로 변하기도 쉽다. 악의적인 사람은 이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므로 지쳐 있을 때 상대가 요구하면 즉시 판단하지 말고 하루 정도 판단을 유보하고, 그게 어렵다면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두는 게 좋다.

미성년자와 여성들을 감금한 뒤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든 미국 유명 가수 알 켈리, 투자금을 재빨리 두 배로 돌려주며 투자자에게 투자 선구안이 있다며 인정 욕구를 자극해 다단계 금융사기를 친 찰스 폰지 등 여러 인물도 소개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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