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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밀 지도, 디지털 주권의 핵심이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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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글과 애플의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결정이 유보되면서, 정부 당국의 최종 판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술 혁신과 글로벌 서비스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해당 사안을 단순한 산업 경쟁이나 편의성 증대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국가 안보, 그리고 미래 핵심 산업의 주도권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더 이상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지도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배달·물류, 스마트시티 등 미래 핵심 산업 전반을 연결하는 '디지털 혈관'이자 국가 인프라의 근간이다. 이러한 핵심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허용할 경우, 국내 지도 산업의 주도권이 해외 기업으로 이전되고, 산업 생태계 전반이 외부 기업의 정책과 전략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 제공 방식은 물론, 데이터 활용 범위와 기술 고도화의 방향성까지 해외 본사의 판단에 좌우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쿠팡 개인정보 노출 사고를 통해 현실로 확인된 바 있다. 사고 이후 쿠팡이 정부 조사 과정에서 보인 비협조적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는 쿠팡이 미국 기업이며 주요 의사결정권자가 해외에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핵심 데이터와 플랫폼 주도권이 해외에 있을 경우, 국내 법과 행정 권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러한 책임 회피와 규제 무력화의 문제는 지도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해외로 반출된 이후 데이터 유출이나 안보 관련 민감 정보 노출, 또는 국내 산업에 불리한 정책 결정이 발생하더라도, 해외 본사에 대해 국내 정부가 실효성 있는 책임을 묻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자율주행차의 '눈'이자 '뇌' 역할을 하는 지도 데이터의 통제권이 외부로 이전될 경우, 국내 모빌리티 혁신은 해외 기업의 사업 전략에 예속될 위험이 크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는 외교적 형평성이다. 만약 구글과 애플에게 '관광객 증가'라는 명분으로 고정밀 지도 반출을 허용할 경우, 국내 관광객 비중이 높은 중국 기업 등이 동일한 논리로 반출을 요청했을 때 이를 거부할 명분은 사실상 사라진다. 특정 국가의 기업에는 허용하고 다른 국가에는 제한하는 결정은 외교적 차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판단 여지를 축소시키는 선례가 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관계가 좋은 해외 국가의 기업에 지도가 반출될 경우 극심한 국론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는 단기적인 경제 효과가 아니라, 디지털 주권과 국가 경쟁력 확보라는 장기적이고 안보적인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쿠팡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핵심 인프라 영역에서는 국내 법과 규제 체계 안에서 책임 있게 운영될 수 있는 국내 플랫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국내 플랫폼은 국내 법규와 국민 정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가 안보와 데이터 보호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은 해외 기업의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디지털 인프라의 주권이 침해되지는 않는지 보다 엄정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안종욱 안양대 스마트시티공학과 교수·대한공간정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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