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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칼럼] 내부의 적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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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밖의 적 50명보다 내부의 적 한 명이 더 무섭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말이다. 이런 걸 ‘내부의 적(enemy within)’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 논리는 좌우익 전체주의 국가에서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에 악용되곤 했다. 나치 독일에서 ‘내부의 적’은 유대인과 동성애자, 나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정치세력이었다. 이들 집단이 사회 곳곳에 숨어 국가의 단합을 방해함으로써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장동혁

전체주의 국가의 정적 제거 술책

민주주의 말하며 반대파 입 막아

지방선거 패배 변명 밑자락 까나


한편, 같은 시대에 러시아에서 ‘내부의 적’은 부농과 종교인, 스탈린을 비판하는 모든 정치세력이었다. 이들 집단에는 ‘계급의 적’, ‘인민의 적’, 공산주의 건설을 방해하는 ‘반혁명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내부에 적을 만들어 권력을 굳히는 이 고전적 술책의 결과는 참혹했다. 독일에서 그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유대인 대학살을, 소련에서는 대숙청과 모스크바 재판, ‘굴락’이라 불리는 강제노동수용소를 낳았다.

‘내부의 적’이라는 논리는 대중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심어준다. 그 불안, 그 공포는 곧 자기들을 위협한다는 그 집단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고, 그 증오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규모의 잔혹함이 탄생한다.

‘내부의 적.’ 그 섬뜩한 표현을 21세기 공당의 대표에게서 듣는다. 그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증오를 가득 실은 극언을 남발한다. “연내에 고름을 짜야 한다.” “돌로 쳐 죽여야 한다.” 왜 그러는 걸까? 사실 ‘내부의 적’ 이론엔 놀라운 효능이 있다. 첫째 그것은 제 오류를 남에게 떠넘기게 해준다. 이렇게 책임을 정적에게 전가해 놓으면, 그 어떤 짓을 저질러도 자기들은 반성하고 사과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가령 지금 국힘의 위기는 윤석열과 단절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당의 당권파는 위기의 책임을 내란을 저지하려 한 이들에게 돌린다. 사과와 반성은 외려 탄핵에 가담한 이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내부의 적’ 이론의 또 다른 효용은 경쟁자를 제거할 손쉬운 수단을 제공해 준다는 것. 위기의 근원이 찬탄파에 있으니, 위기의 극복은 당연히 그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동혁 대표는 J S 밀의 『자유론』을 들고 필리버스터 단상에 올랐다. ‘내부의 적’ 운운하는 이에게는 어울리는 책이 아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견이라도 침묵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밀의 자유론을 신봉한다는 그 사람이 방송에서 자기를 좀 비판했다고 중징계를 내리고, 경쟁자를 제거할 빌미를 찾으려 실정법까지 무시해가며 익명이 보장된 당원 게시판을 뒤진다. 기괴하지 않은가?


그의 손엔 다른 책도 들려 있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지금 민주당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기술한 그 방식 그대로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도 ‘거시기’하다. 그 당의 전직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좀 먹는 게 아니라, 아예 군대를 동원해 화끈하게 깨부수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를 신줏단지처럼 껴안고 웬 놈의 민주주의 타령?

정보통신망법·언론중재법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한단다. 이것도 우습다. 지금 민주당에서 법제화하려는 게 무언가. 표현의 자유에 재갈 물리기. 근데 그건 자기들이 지금 당내에서 하고 있는 일 아닌가. 이렇게 자가당착에 빠져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생물학적 인내력으로 기록을 경신하는 것뿐. 몸을 써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할 게 아니라, 머리를 써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하는데, 답이 안 보인다.

물론 야당 대표가 사상 최장 시간의 필리버스터를 한 데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짧은 감동(?)마저도 ‘계엄은 고작 두 시간에 불과해 내란이 아니’라는 변명에 깊은 절망감으로 바뀌고 만다.

혹자는 ‘지방선거에서 쫄딱 망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한다. 과도한 낙관이다. 총선에서 대패하고 탄핵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데, 그깟 지방선거 좀 졌다고 가출한 개념이 돌아오겠는가. 그래도 문제없다. ‘내부의 적’ 이론에는 또 다른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패배한 순간에조차 그것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내준 것도 다 내부의 적 때문이다.’ 그걸로 모자라면 단골 메뉴인 부정선거론도 마련돼 있다. 이것만 있으면 머리 밖의 패배를 머리 안의 승리로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겼다. 그런데 선관위가 우리의 승리를 패배로 바꿔놓았다.’

보수를 파멸시키는 ‘내부의 적 한 명’이 대체 누구일까? 문제는 이 물음을 놓고 일반 국민과 야당의 당권파가 서로 다른 얼굴을 머리에 떠올린다는 데에 있다. 아찔한 스케일의 괴리. 이게 위기의 근원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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