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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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위로 부르는 성탄 캐럴
1차대전 전쟁터에서도 불려
밥벌이의 사명 성실히 임하며
올해 살아낸 모든 이에 평화를
1818년 전쟁의 피로에 힘들어하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의 작은 마을 오베른도르프에도 성탄이 찾아왔다. 그 마을에 있는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보좌신부 요제프 모르 신부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가장 낮은 곳에 오신다는 성탄의 의미를 묵상하던 중 시 한 편을 완성한다(성당의 이름이기도 한 ‘성 니콜라우스’는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성인이다. 성 니콜라우스 주교는 성탄절에 조용히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요제프 신부는 시에 멜로디를 입혀 성탄절 전야 미사에 오르간 반주에 노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당 오르간이 마침 고장 나 있었다.
요제프 신부는 자신의 시를 친구인 프란츠 자버 그루버에게 전달하며 기타 반주에 어울리는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기타를 잘 치던 그루버는 밤새 작곡하여 크리스마스이브에 노래를 완성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원제 ‘Stille Nachat’, 영어 ‘Silent Night’)’이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성탄 전야 미사에서 두 사람은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노래를 듣고 큰 감동과 위로를 선물로 받았다. 그 후 노래는 알프스 지방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대표곡이 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사람들은 성탄이 가까이 오면 불렀는데 전쟁터에서도 불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겨울, 전선의 참혹함은 극심했다. 특히 참호 전투가 치열했던 서부전선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소설을 각색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그 서부전선 맞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의 서부전선. 독일군 참호에서 촛불과 함께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절망 가운데에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였을 것이다. 혹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꿈에서 그려본 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병사로부터 시작된 캐럴은 합창이 되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독일군은 참혹한 참호에서 여러 노래를 불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독일군이 부른 노랫소리는 전선 건너편 영국군 참호에도 들렸다. 노래를 들은 영국군도 노래로 화답한다. 밤새 총알 대신 노래가 오고 갔고, 날이 밝은 다음 날 독일군과 영국군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누구의 땅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만난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고,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보급품으로 나온 초콜릿과 빵도 나누어 먹었다. 전투 중 전사한 전우의 시신을 함께 땅에 묻었다. 축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사병들이 만든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장군들의 지시로 전쟁은 곧 재개된다. 이후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축구하는 모습이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불쾌했는지 사병 사이의 ‘자발적 휴전’은 군법으로 금지된다.
성탄절이다. 1년 중 어둠이 가장 깊게 내려앉은 밤에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곁에 오시는 날이다. 아기 예수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을 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천사들은 노래 불렀다고 성경은 전한다. 그래서인지 성탄절에는 무엇보다 평화를 기도한다. 성탄절에 부른 노래 한 곡이 전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했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은 성탄절에 전쟁을 멈추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평화가 별건가. 고요하고 거룩하면 평화이다.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도 오늘만큼은 평화롭기를 바란다. 빌딩 숲이 우거진 도시의 어딘가에서 퇴근도 못 하고 내 글을 읽고 있을 직장인에게 평화를 빈다. 경쟁과 갈등, 시기와 질투가 폭발하는 그곳에서 밥벌이의 사명을 당신은 성실히 이루어냈다. 누구보다 올 한 해도 잘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빈다. 우리는 올해도 최선을 다하며 하늘이 주신 삶의 몫을 해냈다. 오늘은 고요한 날, 거룩한 날이다. 성탄을 축하한다.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신문(cpbc)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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