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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안전염려 국가와 안전불감 국가

중앙일보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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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기획2부 기자

김상진 기획2부 기자

스마트폰이 굉음을 울렸다.

“강한 흔들림에 대비하십시오.”

긴급재난문자였다. 경고처럼 곧바로 바닥이 요동쳤다. 물건이 쓰러지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격한 진동이 수십 초 가량 계속됐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아찔함. 지난 8일 밤 11시15분 일본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5의 강진을 온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쓰가루 해협 너머 아오모리가 한눈에 보일 만큼 지척인 하코다테에서였다.

지난 8일 일본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 받은 ‘긴급재난문자’ 화면. 김상진 기자

지난 8일 일본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 받은 ‘긴급재난문자’ 화면. 김상진 기자


강진에 놀란 가슴은 쓰나미 주의보에 또 한 번 놀랐다. TV를 틀자 NHK 아나운서가 고함을 치듯이 “쓰나미가 옵니다. 대피해 주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머물던 호텔은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바닷가에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2011년) 당시 영상으로만 봤던 초대형 쓰나미가 무의식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허나, 문밖은 의외로 조용했다. 자동으로 멈춰 선 엘리베이터 앞 로비에 삼삼오오 모인 투숙객들. 그곳에선 외국인의 당황한 얼굴과 일본인의 침착한 태도가 교차하고 있었다. 호텔 측도 저층 손님에게 고층으로 옮기라고 차분히 안내 방송만 내보냈다. 혼란을 막기 위해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으로 돌아와 보니, 초등학생 아들은 여진을 걱정해 방문이 닫히지 않도록 고정하고 있었다. 한신 대지진(1995년)의 피해지인 고베에서 올봄에 배웠던 지진 대피 훈련 내용이 번뜩 떠올랐다면서다. 지진으로 건물이 내려앉으면 방문이 안 열려서 대피를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문부터 열어두라고 가르친다. 안전교육은 어릴수록 효과가 뛰어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진 발생 36분 뒤, 관저에 도착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얼굴엔 화장기도 없었다. 취임 후 첫 재난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방재상 등을 긴급 소집해 이튿날 새벽 2시 30분까지 상황을 주시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이어 오전 8시11분에 다시 출근, 언론에 피해 상황을 알리고 향후 1주일간 ‘후발 지진’을 경계하라는 주의 정보를 발표했다.

이를 지켜보며 지난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패닉에 빠졌던 한국이 생각났다. 너무도 상투적인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낸 국가적인 재난. 그뿐인가. 사고로 어수선한 때 대통령 내외의 예능 프로그램 촬영 논란까지 일지 않았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잘 준비된 매뉴얼과 사고에 대비한 훈련, 컨트롤타워의 능숙한 움직임만이 국민을 안심케 한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김상진 기획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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