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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유엔 이사국 끝, 한국의 다음 선택은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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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이날 유엔 회원국들은 그대로 투표를 진행했고, 177국 중 156국이 한국의 첫 안보리 이사국 진출에 찬성했다. 각국은 대한민국의 중견국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은 지금도 유엔 기록실에 남아 있다. 30년이 흐른 이달 말 한국은 세 번째 이사국 활동을 마친다.

이번 이사국 임기엔 북한 핵·인권 문제뿐 아니라, 가자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수단 내전 등 굵직한 글로벌 이슈가 많았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국 대표부의 일은 고됐다. 올해 중순 퇴임한 전 유엔 주재 대사가 총회 연설 중 연단에서 코피를 흘릴 정도였다. 외교부 내 대표적 선호 근무지 유엔에 지난 2년간 지원자가 뚝 끊겼다는 사실은, 이렇게 숨 가쁜 글로벌 현안들이 가져온 압박과 책임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엔 내 대한민국의 위상은 독특하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유엔군이 창설됐다. 파란색 유엔군 깃발 아래 참전 용사 195만명이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싸웠다. 80년 유엔 역사상 국제사회가 유엔군을 파병해 한 나라를 지켜낸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금은 유엔 본부 1층 벽에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초상화가 걸린 ‘사무총장 배출국’이 됐다. 이제 한국은 193개 회원국 중 아홉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낸다.

그러나 ‘1국 1표제’가 지배하는 다자 외교의 최전선 유엔은 정글과 다름없다. 개별 국가의 역량보다는 ‘블록’의 힘이 중요해지는 시대를 맞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뜻을 모아 투표권을 행사하고, 미국과 중국이 그들을 품으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보로는 미국 눈치, 경제로는 중국 눈치를 각각 보는 한국의 어정쩡한 태도는 다자 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오는 1월 1일 안보리 이사국 명단에서 빠지는 순간 한국은 다시 193분의 1이라는 개별 국가로 돌아간다. 북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안보리 15국을 상대로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할 처지다. 정글 같은 국제 사회에서 스스로 움츠린다면 누구도 먼저 찾아주지 않는다는 냉엄한 진실은 불변의 법칙이다.

대한민국은 임기를 마치며 국제 사회에 당당히 선언해야 한다. 앞으로도 국력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며, 더 넓은 이슈에서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글로벌 선도 국가’가 되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한국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질 것이다. 미국 외교 거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공직자는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기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없다”는 명언은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자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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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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