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화권에서 예수의 탄생은 오랫동안 화가들에게 사랑받아 온 주제였다. 성탄의 이미지는 대개 빛과 영광으로 가득하다. 천사들이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고 갓 태어난 예수는 이미 신성을 발산하며 성모는 이상화된다. 그러나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이 익숙한 도상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목자들의 경배’(1608∼1609년·사진)는 이탈리아 메시나를 통치하던 원로원의 의뢰로 카푸친 수도회가 운영하던 성당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됐다. 당시 카라바조는 살인 혐의로 로마를 떠나 도망자 신세로 메시나까지 오게 됐다. 논란 많은 화가였지만, 메시나 귀족들은 그의 재능을 높이 샀기에 기꺼이 후원자가 되었다.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던 화가가 그려낸 성탄은 화려한 축제가 아니었다. 그림 속 성모는 천상의 여인이 아니라 출산과 이동으로 지친 한 명의 젊은 어머니다. 낡고 초라한 마구간에서 그녀는 바닥에 반쯤 누운 채 아기 예수를 보호하듯 감싸안고 있다. 갈색 가운을 걸친 요셉과 목동들은 이 장면을 조심스럽고도 경건하게 바라본다. 원로원 귀족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그려지길 기대했겠지만, 카라바조는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 계급의 인물들을 모델로 삼았다.
빛 또한 장엄하지 않다. 단 하나의 미약한 빛만이 인물들의 일부를 드러낼 뿐이다. 후광은 거의 식별되지 않고, 천사들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카라바조는 성탄을 기적의 장면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으로 그렸다. 신성은 빛과 영광 속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낮은 조건 속에서 조용히 드러남을 강조한다. 구원 역시 바닥에 누운 어머니의 손길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를 향해 내미는 보호의 몸짓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마도 그 구원을 가장 간절히 바란 이는, 쫓기는 삶 속에 있었던 화가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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