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와 <만약에 우리> 포스터. 바이포엠 스튜디오, 쇼박스 제공 |
2025년 연말, 한국 멜로 영화 두 편이 잇따라 극장가를 찾는다. 배우 추영우, 신시아 주연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오세이사>)와 배우 구교환, 문가영 주연의 <만약에 우리>다. 두 영화 모두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해외 원작 소설·영화를 한국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건축학개론>(2012) 이후 사실상 흥행한 ‘오리지널’ 멜로 영화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최근 1~2년 사이 검증받은 해외 로맨스 IP를 리메이크한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에만 <말할 수 없는 비밀>(대만), <태양의 노래>(일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대만) 등이 한국판으로 각색돼 개봉했다. 리메이크 멜로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 부담이 적어 신선한 캐스팅 조합을 볼 수 있으나, 원작 이상의 흥행을 거둔 작품은 거의 없었다. <오세이사>와 <만약에 우리>는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일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한 장면. 바이포엠 스튜디오 제공 |
크리스마스 이브(24일) 개봉하는 <오세이사>는 일본 작가 이치조 미사키의 2019년작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잠들고 나면 하루의 기억을 잃는 18세 소녀 마오리와 그에게 얼떨결에 고백한 동갑내기 소년 도루의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2022년작 동명의 일본 영화(미키 타카히로 감독)가 조용한 장기 흥행으로 화제를 모았다. 개봉 초반에는 반향이 적었지만, 10-20대 여성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12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에서 일본 실사 영화가 누적 관객 수 100만을 돌파한 건 <러브레터>(1999) 이후 처음이었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배우 미치에다 슌스케(도루 역)와 후쿠모토 리코(마오리 역)의 케미와 최루성 강한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서정적인 영상미와 음악이 일본판의 강점이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서윤(신시아)과 재원(추영우)이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바이포엠 스튜디오 제공 |
고등학생 서윤(신시아)과 재원(추영우)의 이야기로 번안된 <오세이사>는 서정적인 감성을 공유하되 보다 발랄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일본판은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가며 여주인공이 ‘무엇을 잊었는가’를 미스테리 요소로 사용하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한국판은 이러한 장치를 빼고 순행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주인공의 복잡한 가족사도 축소했다.
대신 서윤과 재원이 쌓아가는 매일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며 로맨틱 코미디스러움을 더했다. 데이트 장면에서는 코인 노래방에서 재원이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을 부르거나, 스터디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한국 10대들에게 친숙한 장소가 등장한다. 메가폰을 잡은 김혜영 감독은 “서로 가까워지며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더 귀엽고 풋풋하게, 좀 더 자세히 표현하려고 했다”고 했다. 일본판 영화의 아련한 감성을 좋아했다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각색이다.
넷플릭스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
올해 마지막 날(31일) 개봉하는 <만약에 우리>는 넷플릭스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의 리메이크작이다. 가난한 젊은 날, 뜨겁게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진 연인이 10년 후 우연히 재회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대도시는 돈 없는 청춘에게 기회의 땅이자 가혹한 착취자다. 중국 베이징의 도시 빈민 린젠칭(정백연)과 팡샤오샤오(주동우)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서울의 대학생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의 이야기로 이질감 없이 번안된다. 꿈을 찾아 대도시로 왔으나 가난과 거듭된 좌절로 꿈도, 아끼던 사람도, 자기자신도 잃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은 그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다.
<만약에 우리>는 탄탄한 원작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간다. 함께했던 과거는 컬러로, 헤어진 후 다시 만난 현재는 흑백으로 보여주는 연출도 유지한다.
<만약에 우리>의 은호(구교환)과 정원(문가영)이 각자 책을 읽으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 쇼박스 제공 |
대신 인물에 변화를 뒀다. 원작에서 린젠칭은 ‘나쁜 남자’에 가까웠지만, 한국판의 은호는 정원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이다. ‘베이징 남자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던 팡샤오샤오와 달리, 정원에게는 건축사라는 꿈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했던 김도영 감독은 “이 영화는 꿈을 쫓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정원이도 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원작과 차별화를 뒀다”고 했다.
원작이 ‘불안형들의 연애’에 가깝다면, <만약에 우리>의 은호와 정원은 훨씬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 드는 연애를 한다. 관계의 농도 변화는 <만약에 우리>를 리메이크작 이상의 독립된 영화로 만든다. 배우 구교환은 은호에게 사랑스러움을 더하고, 배우 문가영은 사랑을 시작할 때의 풋풋함부터 이별할 때의 슬픔까지 넓은 감정 폭을 깊이 있게 표현해 낸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