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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컬럼] AI 시대, 금융인의 기업가정신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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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회장의 '마중물 자본론'
필자는 기업가정신을 특정 산업이나 직군의 전유물로 보지 않는다. 기업가정신은 제조업에도 필요하고, 서비스업에도 필요하다. 공공 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AI 시대로 접어든 지금, 가장 절실하게 기업가정신을 요구받는 영역은 금융이다. 새로운 산업과 기업은 기술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아이디어와 인재, 기술이 있어도 초기 투자 위험을 감수하려는 금융의 판단이 없다면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다. AI, 반도체, 바이오처럼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긴 산업일수록 이 조건은 더욱 엄격해진다.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금융은 애초에 이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 산업의 탄생 뒤에는 언제나 금융의 선택이 있었다미국이 세계 최첨단 산업을 주도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기술자의 천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기금, 벤처캐피털, 자본시장이 실패를 전제로 한 장기 자본을 공급했고, 금융은 관리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움직였다. 닷컴 버블, 금융위기, 팬데믹을 거치며 수많은 기업이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결국 새로운 산업 질서를 만들어냈다. 중요한 점은 금융이 그 과정에서 안전한 관전자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손실을 감수했고, 실패를 경험했고, 그 속에서 다음 기회를 찾아냈다. 산업의 탄생과 진화 뒤에는 언제나 금융인의 결단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AI 시대 금융인의 역할은 단순한 자금 공급자가 아니다. 어떤 산업에 시간을 허용할 것인지, 어떤 기술에 실패를 감당할 여지를 줄 것인지 결정하는 판단자다. 금융의 선택은 곧 산업의 생존 조건이 된다. 박현주, 금융에서 길을 만든 사람이 기준으로 보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걸어온 지난 25년은 금융 영역에서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금융을 단순한 중개 산업으로 보지 않았다. 새로운 시장을 열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길에 자본을 먼저 놓는 역할로 이해해 왔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분산 투자, 해외 주식형 펀드 개척, 연금·퇴직연금 시장에서의 장기 자본 운용 전략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금융은 이미 확인된 길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먼저 열 것인가. 박 회장이 여러 차례 강조해 온 “남들이 다 간 뒤에 가면, 그건 금융이 아니다”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다. 그의 경영 이력을 요약하는 문장에 가깝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택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며 길을 만드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는 뜻이다. ‘마중물’이라는 말에 담긴 책임최근 박 회장이 국민성장펀드 민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배경도 이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의사결정 단계마다 금융·산업계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설계됐다. 자본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판단을 제도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려는 구조다. 박현주는 이 펀드를 이렇게 정의했다.
“150조 원 국민성장펀드는 AI, 로봇, 반도체, 바이오, 인프라 등 기업 성장의 초석이자, 창업을 춤추게 할 마중물이다.” ‘마중물’이라는 표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중물은 결과가 확인된 뒤 붓는 물이 아니다. 아직 물이 나오지 않을 때 먼저 붓는 물이다.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단기 수익의 논리로는 설명되기 어렵지만, 장기 산업 생태계의 논리로는 충분히 설명되는 선택이다.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직 멀리 있을 때에 그를 보고 달려갔다.”
확인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보일 때 먼저 다가가는 선택이다. 마중물 자본의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프로네시스(phronesis), 곧 실천적 지혜라고 불렀다. 계산된 지식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옳은 방향을 선택하는 판단 능력이다. AI 시대 금융에 요구되는 덕목 역시 이 실천적 지혜에 가깝다. 25년의 평가, 그리고 다음 25년에 대한 주문이런 문제의식은 지난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5 아주경제 금융증권대상에서도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금융감독원장상을, **미래에셋증권**은 한국거래소 이사장상을 각각 받았다. 단년도 실적이 아니라, 일관된 판단과 전략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회장이 민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 25년간 금융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온 인물에게, 이제는 국가 성장의 마중물 역할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에 대한 평가이자, 앞으로에 대한 분명한 주문이다. 금융은 이제 질문을 피할 수 없다AI 시대의 금융은 더 이상 중립적일 수 없다. 자본의 선택은 산업의 생사를 가른다. 그래서 금융인의 기업가정신은 위험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위험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으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는 하나의 금융 상품이 아니다. 하나의 질문이다.
AI 시대, 한국 금융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가.

빠른 수익인가, 아니면 오래 살아남을 산업인가. 박현주의 ‘마중물’ 발언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금융이 다시 한 번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 그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아주경제=컬럼니스트 기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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