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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세계문화유산 지위가 도시발전보다 중요한가

머니투데이 정재훈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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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문화유산의 가치가 반드시 '유네스코'라는 이름표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의 축적과 시민의 기억, 도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국제기구의 지정은 가치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 문화유산의 본질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지만 숭례문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다. 화재로 이후 복원됐다는 이유만으로 숭례문의 문화유산 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다. 숭례문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보 1호로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유산이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형식적 지위나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 속에서 결정된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진다. 세계문화유산 지위 유지를 목적으로 특정 문화유산을 도시 한 가운데에 사실상 '섬'처럼 만들어도 되는가. 세계문화유산 여부가 유산 주변의 규제 강도와 직결되는 구조는 이제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보호는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다. 단순한 높이 제한, 일률적인 규제, 전면적인 개발 억제는 일견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문화유산과 도시의 발전을 저해한다. 도시의 활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문화유산 역시 시민의 일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 도시들은 문화유산 보호와 도시 발전을 이분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런던은 세인트폴 대성당과 타워 오브 런던 등 상징적 역사자산을 중심으로 조망 보호 개념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핵심 경관축은 엄격히 관리하고 조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역에서는 합리적 개발을 허용했다. 그 결과 역사적 상징성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심의 기능과 밀도를 유지하는 균형 잡힌 도시 구조를 형성해왔다. 리버풀 역시 문화유산 등재 당시의 완충구역 및 경관 관리 기준을 유지하기보다는 개발 규제를 완화하여 재개발의 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도심 공간구조를 재편했다.

두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해외 도시들은 문화유산을 이유로 도시 발전을 무조건 멈추지 않았다. 도시 발전을 이유로 문화유산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보전과 개발을 대립 구도로 설정하기보다 도시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정교한 기준과 계획을 통해 둘간의 관계를 조정해왔다.

종묘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종묘는 분명히 보호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보호라는 이유만으로 주변 공간이 장기적으로 침체되거나 도시 활동과 괴리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유산은 박물관 속에 고정될 때보다 시민의 일상 속에서 도시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으로 기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더 정교한 기준이다. 높이냐 개발이냐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조망, 거리, 역사적 맥락, 공공성이라는 도시계획과 설계의 언어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향후 논의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유해야 할 합리적 틀이다. 보전과 발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재훈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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