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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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정상적 현상들 빠르게 붕괴
다양한 비정상의 위기 극복해야
정치인들의 비정상 대응도 위험
치밀한 대안 제시로 신뢰 회복을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
챗GPT로 촉발된 AI 시대의 도래로 20세기의 전문성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무수습을 받지 못해 회계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인력이 70%를 넘었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취업이 어려워 변협에 연수를 신청하는 경우가 30%를 넘는다고 한다. 20·30세대 실업자가 36만 명을 넘고, 72만 명이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쉬고 있다. AI의 확산으로 이런 비정상의 추세는 심화될 전망이다.
수명은 100세를 예견하는데 직장의 정년은 60세 전후라서 정년연장이 논의되고, 정년연장은 청년실업을 가중한다. 1970년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62세에 불과했는데, 2024년 84세에 도달했고, 2030년에는 90세를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학 졸업 후 60세까지 평생직장에서 일할 수 있던 20세기 모델은 붕괴하고 있다.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과업지시서에 따라 한 가지 일만 잘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다. 20세기는 규모의 경제로 대기업이 효율적이었지만 조직의 비대로 관료제화가 확산되어 이제는 대기업의 효율성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비해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 회사를 떠나 겪는 어려움을 볼 때 20세기의 관점으로 보면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대학에서 교수가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형식지는 이제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동안 환영받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도 빠르게 IT기업에서 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 기업가치 645조원에 달해 상위 20대 기업에 속하는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대졸 채용 관행을 버리고 고졸 신입사원을 직접 채용하는 인재 발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팔란티어는 대학 졸업장이 역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으로 새로운 인재 발굴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대학 진학률은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2025년에 문을 닫거나 매각대상인 대학의 숫자는 125개나 된다고 한다. 비정상적인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20세기가 시작된 후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했던 것처럼 새로운 변화는 그동안 정상적인 현상들을 빠르게 비정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비정상적 상황을 해결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은 또 다른 비정상적 대응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국제질서를 선도하던 소프트 파워를 포기하고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우방을 협박하고 있다. 지난주 뉴욕 하버드 클럽에서 만난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잘못된 길을 걷는 미국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회오리 속에 대학이 무시되고 지성인들도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스럽다고 했다. 도덕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포퓰리즘으로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버드 법대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도 민주 선거로 선출된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오히려 훼손시키고 있다고 『그들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라는 저서를 통해 비난하고 있다.
우리도 민주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계엄으로 민주질서를 파괴하려는 비정상을 경험했다. 비정상 이후 등장한 정치세력의 문제 해결 방식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으로 보인다. 과잉 대표된 극단 집단들에 의해 양대 정당이 중심을 잃고, 중도층은 이런 비정상의 일상화에 자조 어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해양수산부 임시청사에서 열린 해수부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인류 문명사가 새롭게 전개되는 이 시기에 지도자들은 사회현상을 치밀하게 진단하여 문제 해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책임질 국회의원의 신뢰도는 2015년의 45%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5년에는 28%로 국가기관 중 최하위로 평가되고 있다. 같은 기간 경찰의 신뢰도는 60%에서 67%로 상승했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50%에서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비정상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정상적 해법을 찾아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시켜주면 좋겠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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