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올해에도 여러 산업재해 사망을 마주했다. 지난 10월 경주의 사업장에서 밀폐된 설비 안으로 들어갔던 노동자 세 명이 질식으로 숨졌고, 11월에는 울산의 발전소 해체 작업 현장에서 구조물이 붕괴되며 일곱 명이 사망했다. 12월에는 광주 대표도서관 건설현장 붕괴 사고로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유형은 달랐지만, 위험이 만들어진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고, 그 대부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고, 자신이 처한 위험한 조건을 인지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작업 일정과 공정, 설비 가동 여부와 작업 방식은 대부분 원청과 발주 단계에서 결정됐고, 하도급 노동자들은 그 결과를 현장에서 감당했을 뿐이다. 사고 이후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수사다. 그러나 현실의 수사는 여전히 현장 관리의 실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하도급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구조 자체는 수사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산재사고를 단순한 현장 실수로 축소하지 않고, 위험을 알고도 멈추지 않았던 선택에 책임을 묻겠다는 데 있다. 따라서 수사의 핵심 질문은 “누가 현장에 있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위험을 되돌릴 수 있었는가”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원청뿐 아니라 발주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발주처는 현장에 직접 있지 않더라도 공사 기간과 예산, 설계 변경과 공정 승인, 설비 가동 여부와 작업 중단 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위험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실질적 권한을 가진 주체다. 그 책임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물을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사정에 따라 판단될 문제이지만, 적어도 발주 단계의 결정이 수사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희생자들은 모두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고, 자신이 처한 위험한 조건을 인지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작업 일정과 공정, 설비 가동 여부와 작업 방식은 대부분 원청과 발주 단계에서 결정됐고, 하도급 노동자들은 그 결과를 현장에서 감당했을 뿐이다. 사고 이후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수사다. 그러나 현실의 수사는 여전히 현장 관리의 실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하도급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구조 자체는 수사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산재사고를 단순한 현장 실수로 축소하지 않고, 위험을 알고도 멈추지 않았던 선택에 책임을 묻겠다는 데 있다. 따라서 수사의 핵심 질문은 “누가 현장에 있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위험을 되돌릴 수 있었는가”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원청뿐 아니라 발주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발주처는 현장에 직접 있지 않더라도 공사 기간과 예산, 설계 변경과 공정 승인, 설비 가동 여부와 작업 중단 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위험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실질적 권한을 가진 주체다. 그 책임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물을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사정에 따라 판단될 문제이지만, 적어도 발주 단계의 결정이 수사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수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해조사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재해조사는 처벌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사고의 기술적·조직적 원인을 밝혀 위험이 어떤 결정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사회가 학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재해조사는 대부분 사건별 임시 기구에 맡겨지고, 결과는 권고로 끝난다. 그 권고가 현장의 운영 기준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행을 강제하거나 점검하는 장치가 없으니, 사고는 ‘사건’으로 소모되고 같은 위험은 반복된다.
올해 집단 산재 사망이 발생한 이 사고들 역시 마찬가지다. 광주 대표도서관의 설계 변경과 공정 조정, 울산 발전소 해체 작업의 구조 안정성 검토, 경주 사고에서 공장 가동 중 수리 작업을 허용한 판단이 어떤 관리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재해조사가 먼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실제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책임체계를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 권고하고, 그 권고가 현장의 운영 기준과 제도 개선으로 실제 이어지도록 이행을 강제하는 제도가 분명히 마련돼야 한다.
이렇게 수사에서는 책임이 좁아지고, 재해조사에서는 교훈이 축적되지 않으니 예방체계가 작동하기 어렵다. 사고는 애도로 마무리되고, 비슷한 조건은 다른 이름의 현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미 알고 있었던 위험이 반복되는 이유다. 수사는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재해조사는 위험이 만들어진 구조에 대한 기록을 사회에 남길 때에만 같은 죽음은 멈출 수 있다.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제도의 문제이자, 이를 요구하고 점검해야 할 우리의 선택이다.
2026년 새해에는, 이미 알고 있었던 위험이 더는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 의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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