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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가라시 고헤이, 복구 될 수 없는 모든 것들에게

뉴시스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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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 해피 포에버' 연출·각본 맡아
아내 떠나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 그려내
"상실의 재생은 불가능할 게 아닐까요"
"살아있다는 그 감각을 관객에 주려 해"
코로나 사태 이후 상실한 것에 대해서
"동시대성 생각해…복구 될 수 없는 것"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상실과 재생이 세트처럼 함께 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죠. 하지만 상실의 재생은 없지 않을까요. 불가능한 게 아닐까요."

영화 '슈퍼 해피 포에버'(12월24일 공개)는 잃어버린 것 혹은 사라진 것에 관해 얘기한다. 사노(사노 히로키)는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빨간 모자를 쓴 소년을 보자 뒤쫓아간 그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그 모자가 어디서 난 것이냐고 다소 공격적으로 캐묻는다. 당연히 상대는 사노에게 적개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프런트에 가서 물건 하나를 찾는다. 바로 빨간 모자. 사노는 그 모자를 2018년 여름에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5년 전 없어진 물건을 찾아 달라는 요청에 프런트 직원 역시 사노를 이상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노는 해변가를 정처 없이 떠돈다. 담배를 피우고, 멍하니 앉아 있고, 만취해서 길에 널부러진다. 그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건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바닷가는 아내와 추억이 있는 장소인 듯하다. 지금, 사노의 삶은 휘청인다. 평범한 영화였다면 사노가 이 상실감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슈퍼 해피 포에버'는 막무가내로 희망차 보이는 제목과 달리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사라진 건 사라진 것,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것이다. 사노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한 때의 인생이 담긴 추억만 그 바다에 남겨놓고 말이다. 그래서 이가라시 고헤이(五十嵐耕平·42) 감독은 "상실은 재생될 수 없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에 온 이가라시 감독은 다만 "상실엔 슬픔만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분명 기쁨의 측면도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면 받으실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상실이 제 안에 기쁨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형태 중 하나일 겁니다. 사노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건 세상을 보는 방식 중 하나겠지요."

사노는 아내 나기가 잠들어 있다가 그 모습 그대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가라시 감독은 자신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친구 중 한 명이 나기가 죽은 것처럼 세상을 떠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이 실제로 겪은 일에 기반하는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슈퍼 해피 포에버'는 삶이 주는 실감으로 꽉 차 있다. 이 영화는 3부 구성이다. 1부는 사노의 방황, 2부는 사노와 나기가 처음 만났던 5년 전 여름, 3부는 두 사람 모두 없는 바닷가 풍경. 이 스토리들엔 어디로 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나날이 담겼고, 이 일상의 감각은 요란스럽지 않게 하지만 정확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린다.

"살아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노는 그때도 살아 있고 지금도 살아 있죠. 나기는 지금은 살아 있지 않지만 그땐 분명 살아 있었습니다. 관객에게 나기가 살아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줘야 했죠. 그게 바로 제가 말한 전화를 걸면 받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일 거라고 본 겁니다."




이가라시 감독은 여기에 더해 하나의 대상에 대해 느끼는 두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상실 속에 있는 기쁨의 측면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방향이다. "현재 사노를 보면 슬픕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노를 보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돼요. 현재 나기가 없다는 건 관객에겐 슬픔으로 다가옵니다만 나기가 죽기 전 과거 한 때의 모습을 보면 관객은 그를 보면서 기쁨을 느낄 겁니다. 앞모습과 뒷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달까요. 그게 삶의 감각일테니까요."

'슈퍼 해피 포에버'는 삶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는 그 느낌을 바다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가라시 감독은 세상을 떠났다는 그 친구가 서퍼이기도 했다는 점, 바다는 언제 봐도 똑같은 바다인 것 같지만 항상 새로운 파도를 몰고 온다는 그 속성을 이야기에 녹여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노의 친구 미야키는 사노에게 작가 카모노 초메이의 '호조키'(빙장기)의 한 구절을 읊어준다. "흘러가는 강물은 끊임 없이 흐르고 하물며 원래의 그 물이 아니다. 웅덩이의 물거품은 사라지고 또 맺히니 오래 그대로인 법이 없다.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의 거처 또한 그와 같다." 이가라시 감독은 말했다. "심플하게 말하면 바다는 불변하면서도 계속 변합니다."



'슈퍼 해피 포에버'의 상실은 단순히 떠나버린 사랑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코로나 사태 이후 변해버리고만 세계에 관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팬데믹으로 제작이 미뤄지다가 2023년에 찍을 수 있었다. 극 중 코로나 사태가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던 2018년과 마스크를 막 벗은 2023년의 풍경엔 명확한 차이가 있다. 마스크를 쓴 프런트 오피스 직원, 확연히 줄어든 관광객, 폐업한 가게들. 이가라시 감독은 "동시대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 우린 원래 생활로 돌아간다고 했지요. 하지만 우린 코로나 기간 중에 많은 걸 상실했습니다. 또 많은 게 바뀌었죠. 원래 생활로 복구 될 순 없는 겁니다. 그 복구 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잃은 걸까,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만 이가라시 감독은 '슈퍼 해피 포에버'를 "너무 비장하게 보지는 말아 달라"고 말하며 웃었다.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전 그저 든든한 영화, 심플하면서도 든든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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