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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96] AI 시대와 ‘인문학 1%’

조선일보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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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화가이자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1795년 ‘뉴턴’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쭈그리고 앉은 뉴턴은 컴퍼스를 들고 반원과 삼각형이 그려진 종이를 응시한다. 블레이크는 이 그림에서 뉴턴이 상징하는 근대 과학이 자연의 풍요로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계산과 이성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음을 비판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블레이크의 그림은 영국 조각가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에 의해 거대한 브론즈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1995년 이 조각은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에 신축된 영국 도서관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공개됐다.

작품이 공개되면서 과학자들은 작품을 철거하거나 다른 작품으로 변경하라고 항의했다. 블레이크는 뉴턴의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폄하한 사람이며, 따라서 이 조각이 영국 도서관을 상징하는 예술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일부 비평가들은 파올로치의 작품이 블레이크 원작의 풍자와 비판을 희석해 오히려 과학을 찬양하는 작업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논쟁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은 이 작품을 뉴턴의 과학과 블레이크의 인문학을 연결하고 있으며, 과학과 인문학의 전통을 모두 담은 영국 도서관의 가치를 잘 반영한다는 입장을 수용했다. 블레이크와 파올로치는 과학과 인간 정신의 관계를 고민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 논쟁은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뉴턴이라는 과학적 상징이 블레이크의 비판적 시선과 결합하고, 파올로치의 조각을 통해 시각화되면서 과학적 지식과 합리적 사고의 가치와 한계를 동시에 성찰할 수 있었다. AI가 사회와 문화를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가 기술적 성취에 걸맞게 함께 진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천박한 과학만능주의와 기술 결정론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2026년 전체 R&D 예산 중 인문사회 기초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씁쓸하기만 하다.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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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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