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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도 소아과를 떠날 수 없는 환자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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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일 태백산에서 진행한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 선천성심장병 인식 개선 산행 모습.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제공

지난 2월1일 태백산에서 진행한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 선천성심장병 인식 개선 산행 모습.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제공




안상호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



어린이병원 소아과 외래 진료실 앞,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 사이로 머리카락이 희끗한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눈에 띈다. 환아 보호자로 보이지 않는 이들이 왜 소아과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린이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고, 성인이 된 지금도 어린이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성인 선천성 심장병’(ACHD) 환자다.



과거에는 생존이 어려웠던 복잡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이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게 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 이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돌볼 것인가다.



최근 일부 상급 종합병원에서 연령을 기준으로 응급실 수용 지침을 변경하면서,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의료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태아기부터 소아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의료진에 의해 관리되어 온 복잡 선천성 심장병 환자가 만 18살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병원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질환의 특수성을 간과한 연령 중심 행정 판단의 문제다.



선천성 심장병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의 구조와 혈류가 정상과 다른 질환이다. 단심실이나 ‘폰탄(Fontan) 순환’ 등 복잡 심기형 환자의 심장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성인에서 주로 발병하는 후천성 심장질환과 같아지지 않는다. 이들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특성은 성인 허혈성 심질환이나 심장판막질환, 대동맥질환 등과는 전혀 다른 의학 영역에 속한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세부 전문 분과가 고도로 발달해 있지만, 이는 동시에 전문 영역 밖 환자에 대한 진료 공백을 낳을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성인 심장내과나 성인 흉부외과 전문의가 일반 성인 심장질환에는 숙련되어 있더라도, 복잡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수술 후 해부 구조와 장기 경과를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응급 대응을 수행하기에는 체계적인 경험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성인 환자가 일반 성인 응급실로 이송된다면, 의료진은 환자의 과거 수술력과 현재 혈역학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표준적인 성인 응급 처치가 오히려 환자에게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제 가이드라인은 성인 선천성 심장병을 독립된 전문 분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심장협회, 미국심장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성인 선천성 심장병을 완전히 독립된 전문 분야로 규정하고 있고, 중증·복잡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는 반드시 전문 센터에서 진료와 응급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소아 진료 인프라와 연속성을 유지하는 성인 선천성 심장병 전문 센터 등 전담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성인 선천성 심장병 전문 센터가 단 한곳도 없다. 어린이병원이 태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산전 상담부터 성인 선천성 심장병 전문 센터 역할까지 담당하며 공백을 메우고 있다.



소아에서 성인 진료로의 이행, 즉 전환의 핵심은 연령이 아니다. 국제 문헌은 전환을 ‘성인이 되면 자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라, 환자의 질환 특성과 임상적 복잡도를 감당할 수 있는 성인 진료체계로 안전하고 연속성 있게 이행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연령만으로 응급실 문턱을 나누는 것은 전환이 아니라 의료 공백이며,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결정이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와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에게 어린이병원은 ‘어릴 때 잠시 다니는 곳’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해 온 의료진과 시스템이 있는 생명줄이다. 지금이라도 연령 기준의 응급실 수용 지침을 재검토해야 한다. 연령이라는 행정적 잣대가, 중증·희귀질환 환자에게 생명의 문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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