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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 탑동365일의원 원장
주치의제도를 처음 준비했던 것은 김영삼 정부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1996년 8월 서울 서초구, 경기 파주시와 안성군에서 ‘주치의등록제’ 시범사업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명확한 보상 체계 등 준비 부족과 의사협회의 반발로 시범사업은 시작도 못 하고 무산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공약을 바탕으로 1998년부터 전문 의학회의 도움을 받으며 준비했다. 의사협회도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조건으로 참여했다. 2000년 5월 ‘주치의제도 실행방안 개발’ 보고서가 나오면서 ‘단골의사제’란 이름으로 시작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해 7월 의약분업 사태로 주치의제도를 비롯해 일차의료 개혁을 위한 모든 노력들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 두번의 노력이 허사가 된 이후 일차의료전담의제도, 선택의원제도 등 비슷한 제도 역시 준비 단계에서 번번이 좌초했다.
지난 10월부터 제주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치의제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65살 이상 어르신과 12살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대상 지역이 일부 지역이라는 점, 현 제도상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강제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 한계로 작용하지만 1년 넘은 준비를 통해 시작했다.
이 준비에 참여한 필자가 느낀 것은 첫째, 이러한 정책의 성공은 정책 의지와 도민 공감대 형성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이다. 도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거나 도민과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이번 도입 역시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관련 전문가들의 철저한 준비다. 1년 넘게 여러 나라의 달라진 주치의제도 양상을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적용할 방안들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정부에서 오래도록 시행해 온 일차의료 시범사업들의 문제를 분석해 현장의 주치의들이 도민에게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주치의 서비스들로 내용을 채웠다.
시범사업 시작 후 주치의를 맡을 의사를 순조롭게 모집하였고, 의사 및 간호사들을 교육하였으며, 도민들이 주치의 등록에 참여하게 되었다. 단순히 진찰하고 처방만 하는 형태가 아니라 등록 단계에서 주민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건강증진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20개 만성질환을 선정해 주치의들이 주민에게 상담과 교육을 한다. 지금 제도상 안 되는 방문진료도 수행하면서 거동이 힘든 도민에겐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일반 진찰과 처방은 건강보험 규정에 따라 현재 본인 부담이 있지만, 핵심 서비스는 도 재정으로 지원해 대상자의 부담을 낮췄다. 건강 증진을 통해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뿐더러 중증으로 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으니 궁극으로는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작 단계이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범사업에서 준비한 10개 서비스 각각과 세부 내용까지 주치의들이 입력해야 하는 행정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환자 교육을 위한 교육 자료, 의뢰와 회송 체계, 방문진료 방법 등 세세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다.
하지만 큰 산을 넘었으니 능선을 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장에서는 등록이 순조롭게 되고 있고, 진료실 풍경이 달라질 것이라는 도민들의 기대감과,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주치의들의 마음가짐을 느끼면서 시범사업이 순항할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제주에서 첫선을 보인 주치의제도가 전국으로 뻗어 나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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