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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는 깎고, 무게는 늘렸다…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설계 결함 탓?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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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설계 적정성 검토 거치며
트러스 두께 34→ 20mm로 축소
설계 바꿔 콘크리트 타설량 늘려
'판폭 두께비' 제한값 초과 논란도
공공 건축 설계 검토 시스템 도마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대표도서관 공사 붕괴 현장에서 16일 오후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대표도서관 공사 붕괴 현장에서 16일 오후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광주광역시가 광주대표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조달청 설계 적정성 검토를 거치며 핵심 구조물인 철제 뼈대 구조물(트러스)의 두께를 상당 부분 줄인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구조용 강재(鋼材)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핵심 지표인 '판폭 두께비'가 법적 제한치를 넘었다는 설계 결함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설계 단계부터 구조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부실 설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2021년 7월 광주대표도서관 건립 사업 중간 설계 도면과 같은 해 12월 최종 (실시) 설계 도면을 비교한 결과, 지붕층을 지탱하는 메인 트러스 규격이 전반적으로 축소됐다. 실제 48m 장경간(長徑間·기둥과 기둥 사이) 중 하중이 가장 집중되는 지붕층 1번 상현재(上弦材)의 경우 당초 두께 34㎜의 극후판 강재를 사용하도록 설계됐지만, 최종 설계 도면엔 20㎜로 얇아졌다. 24m 장경간의 경우 최대 22㎜였던 강재 두께가 최종 설계에서 10, 12㎜ 로 줄었다. 트러스 단면 높이 역시 800㎜에서 700㎜로 낮아진 반면, 폭은 300㎜에서 400㎜로 넓어졌다. 해당 트러스는 전체 길이가 168m에 달한다. 설계 업체인 H건축사사무소가 높이와 폭, 두께가 각각 다른 길이 6m짜리 사각형 강재 파이프 8개를 기둥 등에 용접해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시공하도록 했다. 이 같은 강재 규격 변경은 조달청의 설계 적정성 검토를 거쳤다.

문제는 얇아진 강재의 판폭 두께비가 국가 건설 기준에서 정한 한계치를 초과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판폭 두께비는 철판의 너비와 두께의 비율을 뜻하며, 강한 압력을 받을 때 철판이 휘어버리는 '좌굴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 계산 항목이다. 이날 광주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대표도서관 공사장 붕괴 사고 원인과 대책 진단 토론회에 참석한 건축구조기술사 A씨는 "광주대표도서관 구조 계산서에 기재된 강재의 판폭 두께비를 계산해 보니까 제한값인 27을 넘으면 안 되는데, 31과 56이 나왔다. 이는 반칙이다"고 말했다. A씨는 "판폭 두께비가 부족해 국부 좌굴이 발생했고 이는 횡좌굴로 이어지며 결국 구조물이 붕괴한 것으로 보인다"며 "판폭 두께비가 제한값을 초과했다는 것은 뼈대가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꺾여버리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강재는 얇아졌는데, 그 위에 얹히는 하중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지난 4월 설계 변경을 통해 덱 플레이트 규격을 바꾸면서 지상층과 지붕층 트러스 상부 콘크리트 타설량을 기존 632㎥에서 853㎥로 221㎥(34.9%) 늘렸다. 한 구조기술사는 "트러스는 건물 전체 하중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뼈대인데, 상부 고정 하중이 늘었다면 단면 성능은 보강되는 게 원칙"이라며 "강재 두께를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 콘크리트 하중을 늘렸다면, 구조 계산과 안전율 재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시는 이에 "판폭 두께비 계산 여부에 대해선 지금 알려줄 상황이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조달청의 공공 건축 설계 검토 시스템도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설계 적정성 검토를 했는데 구조물이 붕괴되느냐는 의문이 증폭되면서다. 지방자치단체가 국비를 지원받아 추진하는 총사업비 200억 원 이상의 건축 공사는 계획·중간·실시 설계 단계마다 조달청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예산 절감을 위해 과다 설계를 찾아내는 데 특화한 조달청 검토 시스템이 회계적 적정성을 넘어 구조 안정성 평가에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달청 설계 적정성 검토 자문위원은 "구조 보강 요구가 '원가(예산) 절감' 기조와 충돌해 수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붕괴 사고도 설계 적정성 검토 과정에서 비용 절감 압박과 비전문가 중심의 심의 때문에 설계 결함을 제때 걸러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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