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영국인 남성이 총 198명이 탄 여객기 안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항공기 폭파 시도 혐의로 체포된 영국인 리처드 리드(오른쪽)가 미국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의 매사추세츠주 경찰서에서 이송되고 있다./로이터=뉴스1 |
2001년 12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영국인 남성이 총 198명이 탄 여객기 안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날 아메리칸 항공 63편은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륙한 지 1시간 30분쯤 됐을 무렵 여객기는 대서양 상공을 날고 있었고, 승무원들은 기내식 서비스 중이었다.
서비스 직후 일부 승객들은 기내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승무원 에르메스 무타르디에 역시 성냥이 타는 듯한 냄새를 맡았고, 이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기내 통로를 따라 수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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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성냥 켠 남자…승무원·승객 제압에 '격렬' 몸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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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무타르디에는 이내 창가에 혼자 앉아 성냥불을 켜려고 하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무타르디에는 이 남성이 기내 흡연을 시도한다고 생각해 "기내에서는 흡연이 금지돼 있다"고 경고하며 제지했고, 그는 "그만두겠다"고 말하며 순순히 따르는 듯했다.
그러나 무타르디에가 떠나자 이 남성은 계속해서 불을 붙이려 했다. 몇 분 후 무타르디에는 이 남성이 좌석에서 몸을 숙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가 "뭐 하시냐?"고 물었다. 그가 불을 붙이려 했던 건 담배가 아니라 신발 속에 숨겨둔 폭발물이었다. 그의 무릎 위에는 신발 한 짝과 신발 안으로 연결된 도화선, 불이 붙은 성냥이 놓여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이 남성은 자신을 붙잡으려는 승무원 무타르디에를 밀어 넘어뜨렸다. 무타르디에가 도움을 요청하며 비명을 지르자 다른 승무원 크리스티나 존스가 제압을 위해 나섰다. 그러자 이 남성은 몸싸움을 벌이다 존스의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여러 승객이 힘을 합친 후에야 키 193㎝ 몸무게 98㎏의 이 남성을 제압할 수 있었다. 승무원과 승객들은 플라스틱 수갑과 가죽 벨트, 헤드폰 줄을 사용해 이 남성을 칭칭 감아 묶고 물을 뿌렸다. 기내에 있던 의사는 항공기의 응급 의료 키트에서 찾은 진정제를 그에게 투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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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현금 구입, 불안한 모습…보안요원 의심에 심문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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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성은 영국인 리처드 리드(당시 28세)였다. 리드는 당초 사건 전날인 21일 파리발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오르려 했으나, 파리에서 수속을 밟을 때부터 의심을 샀다.
항공 보안요원은 항공권을 현금으로 산 점, 짐 없이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점과 불안한 모습, 회피적인 태도를 의심해 그를 프랑스 경찰에 인계했다.
그러나 리드의 영국 여권이 위조된 것이 아닌데다 테러 용의자 명단에 오른 인물도 아니었기에 경찰은 별도의 엑스레이 검사, 폭발물 탐지견 검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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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게 탄 비행기…'운동화 폭탄', 비·땀 덕에 점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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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심문 시간이 길어진 탓에 리드는 항공편을 놓쳤고,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다음 날 아메리칸 항공 63편에 탑승했다. 이날 리드는 밑창을 파낸 뒤 플라스틱 폭발물을 가득 채운 운동화를 신은 상태였다.
리처드 리드가 2001년 12월 22일(현지시간) 아메리칸 항공 63편 여객기 안에서 터뜨리려고 했던 운동화의 모습. 밑창 아래에는 비행기 동체에 구멍을 내 추락시킬 만큼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283g의 폭발물이 들어 있었다. /로이터=뉴스1, FBI 공식 홈페이지 |
승무원이 폭발물에 불을 붙이려던 리드를 발견했을 때 이미 그는 폭발물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폭발물이 터지진 않았다. 그날 비가 온 데다 발에 땀이 차 도화선이 젖어버린 탓에 점화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리드가 붙잡힌 이후 아메리칸 항공 63편은 두 대의 미 전투기 F-15의 호위를 받으며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착륙 후 리드는 매사추세츠주 경찰에게 체포됐다.
리드의 운동화 내부에서는 TATP(트리아세톤 트리퍼옥사이드)와 PETN(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 등 폭약 총 283g(10온스)이 발견됐다. TATP는 제조나 운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터질 위험이 높아 '사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고성능 폭약이며, PETN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폭약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꼽힌다. 리드의 테러가 성공했다면 폭발로 인해 여객기 동체에 구멍이 나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테러 미수 사건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의 일이었기에 미국 사회와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충격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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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의 적" 알카에다 추종한 영국인…가석방 없는 110년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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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2일(현지시간) 아메리칸 항공 63편에서 운동화 속 폭발물을 터뜨리려고 했던 리처드 리드의 모습. 리드는 3번의 종신형과 가석방 없는 110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에게는 총 200만 달러의 벌금도 선고됐다. /로이터=뉴스1, FBI 공식 홈페이지 |
리드는 영국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을 압델 라힘으로 개명한 바 있었다. 그는 1997년 말 급진 이슬람 집단에 가담했으며, 1998년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알카에다 훈련 캠프에서 테러 활동 훈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리드는 미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자신이 직접 폭탄이 든 신발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리드는 신발 뒤축에 구멍을 내고 여기에 엄청난 파괴력의 폭발물을 넣어놨으며 공항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전선이나 금속성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제작했다.
2001년 12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아메리칸 항공 63편에서 운동화에 숨겨둔 폭발물을 터뜨리려다 붙잡힌 리처드 리드가 이듬해 10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연방 법원에서 항공기 폭탄 테러를 시도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묘사한 제인 플라벨의 법정 스케치다. /AFPBBNews=뉴스1 |
2002년 보스턴 연방 법원에서 기소된 리드는 10월 4일 테러 관련 혐의 8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2003년 1월 31일 3건의 혐의로 종신형 3번과 가석방 없는 110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각 혐의에 대해 최대 25만 달러(한화 약 3억68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아 총 200만 달러(약 29억4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내내 리드는 범행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과 함께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고 공판 중 리드는 "내가 미국의 적이며 알카에다와 결탁했다"라며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지휘 아래 있는 하나님의 군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윌리엄 영 판사는 "당신은 어떤 군대의 군인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다. 당신을 군인이라고 부르는 건 당신에게 너무 과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현재 리드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죄수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최고 보안의 콜로라도주의 플로렌스 교도소(ADX Florence)에서 복역 중이다.
리드의 폭탄 테러 시도는 신발에 숨겨진 비금속성 폭발물을 탐지하는 것이 어려운 항공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이에 미국 교통안전청(TSA)은 2006년부터 보안 검색 시 신발을 벗도록 했다. 이 규정은 2011년 12세 이하 어린이와 75세 이상 성인은 신발 신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완화됐으며, 지난 7월 완전히 폐지됐다. 미국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새로운 보안 기술 도입으로 승객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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