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

한국일보
원문보기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수면 위에서 조용히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가 늪을 지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수면 위에서 조용히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가 늪을 지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안개가 낮게 깔린 늪 위로 시간마저 숨을 죽인 듯하다.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고니들의 울음소리가 고요를 가르며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소리는 크지 않지만 그 여운은 길다. 아무 말 없이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한 울음은 이 겨울 풍경과 닮아 있다. 한 해가 이렇게도 빨리 지나갔다. 돌아보면 숨을 고를 틈조차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지난해의 계엄 파동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과 대선까지 역사의 거대한 바퀴가 쉼 없이 굴러가는 한복판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방향을 잃은 채 정신없이 흘러온 한 해였다.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고니들의 울음소리만 늪을 지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고니들의 울음소리만 늪을 지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그래서인지 이제는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떠들썩한 결산도 요란한 다짐도 아닌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 말이다. 그럴수록 사람은 자연을 찾게 된다. 말이 적고, 판단이 없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곳 겨울 우포늪은 그런 공간이다. 안개 낀 우포늪 주매제방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발밑의 길은 분명하지만 앞은 희미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다. 안개는 언젠가 걷히고 길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이곳은 이미 수없이 증명해 왔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늪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고니들은 해마다 다시 돌아왔다.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한 해 동안 쌓인 말들과 감정들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겨울의 우포늪은 비워냄의 풍경이다. 잎을 떨군 나무처럼 필요 없는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없이 권한다. 그래야 다시 채울 수 있다고 봄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고. 고니의 울음이 다시 한번 늪 위를 스친다. 그 소리를 따라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한 해를 잘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것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이다. 우포늪의 겨울은 그렇게 말없이 등을 토닥여 준다.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정적이 흐르는 우포늪의 겨울은 시간마저 숨을 죽인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창녕=왕태석 선임기자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김우빈 신민아 결혼
    김우빈 신민아 결혼
  2. 2트럼프 엡스타인 파일 논란
    트럼프 엡스타인 파일 논란
  3. 3송성문 샌디에이고 계약
    송성문 샌디에이고 계약
  4. 4손흥민 볼리비아 프리킥
    손흥민 볼리비아 프리킥
  5. 5오세훈 강북횡단 지하고속도로
    오세훈 강북횡단 지하고속도로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