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서대문구 ‘홍대선원’ 불당에서 만난 주여진 해탈컴퍼니 대표가 ‘와불(臥佛)’ 자세를 따라 하고 있다. 신간 ‘깨닫다(다산책방)’는 Z세대의 위트를 가미한 불경 필사 책이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도파민, 그건 바로 깨달음이니라’ 같은 표현. 물론 ‘처음 마음을 낸 순간, 깨달음은 이미 이루어졌다’ 같은 진짜 부처님 말씀도 있다. /장련성 기자 |
Z세대는 불교를 ‘힙불교’라고 부른다. ‘극락도 락(Rock)’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불교는 하나의 콘텐츠다. 올해 서울·대구 등에서 열린 불교박람회에는 2030 관람객을 중심으로 연간 40만명이 다녀갔다. K팝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도 읽었다는 불교 책은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지켰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 한국 젊은 세대에서 불교 문화가 유행한다는 기사를 쓰면서, 불교박람회에서 2030 세대가 굿즈를 잔뜩 사 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 중엔 ‘해탈컴퍼니’ 주여진(30) 대표가 있다. ‘불교계의 아이돌’이라고도 불린다. B급 감성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들어간 ‘깨닫다’ 티셔츠는 불교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화제가 됐다. Z세대의 ‘생필품’ 수준인 즉석 사진관 ‘인생 네 컷’도 주 대표에게 손을 내밀고 사진 프레임을 제작했다. 이번 연말부터는 서울 용산구 한 대형 쇼핑몰에 84평 규모의 팝업스토어도 연다. 17일엔 유쾌한 불경 필사책 ‘깨닫다! 108번뇌 타파하는 셀프 열반 프로젝트’(다산책방)까지 냈다. 그를 10일 도심의 불교 성지 ‘홍대선원’에서 만났다. Z세대·외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카페 같은 사찰이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대선원에서 만난 해탈컴퍼니 주여진 대표./장련성 기자 |
주 대표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출가했다. 어렸을 적부터 절에서 자랐다. 집에서 혼날 때면 회초리 대신 108배를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스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워 학교에선 아웃사이더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방황했다. 문화 사업을 하는 계약직 회사원은 도저히 맞지 않았다. 백수로 한참을 집에서만 지냈다. 주 대표는 “당시를 생각하면 암흑 그 자체였다”며 “번듯한 직장인으로 사는 친구들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다”고 했다.
주 대표는 청년들이 불교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어느 세대보다 자존감이 떨어진 청년들이 불교의 자비로운 가르침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스물여덟 살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주 대표는 어느 날 “진짜 하고 싶은 걸 잠깐만 해보자” 하고 단박에 깨닫는다. 이른바 돈오(頓悟)의 순간. 음악을 시작하고 공연도 열었다. 이 경험은 불교 박람회 디제잉까지 이어진다.
해탈컴퍼니가 Z세대에 인기를 끈 건 우연만은 아니었다. Z세대가 즐겨 쓰는 밈을 활용한 티셔츠를 만들어 불교 박람회에서 팔았는데, 이게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박람회의 해탈컴퍼니 부스는 건물 밖까지 줄이 늘어섰다. 주 대표는 “티셔츠 물량이 모자라 친구 가족 모두를 동원해 급하게 추가로 찍어냈지만 감당이 안 되더라”며 웃었다. BTS의 RM도 이 부스를 찾았다고 한다. 정작 그는 늘어선 줄을 관리하느라 RM을 만나지도 못했다. 주 대표는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또 만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RM을 못 만난 아쉬움을 불교 사상 중 하나인 ‘연기설(緣起說)’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대선원에서 만난 해탈컴퍼니 주여진 대표가 '싱잉볼'을 머리에 얹고 있다./장련성 기자 |
왜 Z세대에게 불교가 힙할까. 주 대표는 “불교는 원래 힙했다”고 답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늘 물질적 부가 사회의 가치였지만 불교는 왕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면서 시작됐지 않느냐”며 “계급이 공고하던 먼 과거부터 여성·노예 다 같이 수행하던 불교는 진작부터 힙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 대표는 “해탈컴퍼니 같은 젊은 불자들은 힙한 불교를 ‘밈’ 같은 청년의 언어로 번역했을 뿐”이라고 했다.
‘힙불교’로 책까지 쓴 주 대표의 목표는 뭘까. 그는 거창하게 “인류의 심리적 진화”라고 답했다. “요즘은 모두가 맨날 싸우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가슴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불교의 가르침을 새기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불교의 재미를 다 함께 즐기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해탈컴퍼니가 쓴 불경 필사책 ‘깨닫다! 108번뇌 타파하는 셀프 열반 프로젝트(다산북스)' |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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