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중앙일보 언론사 이미지

“재밌더라고, 붓장난”…색을 쏙 뺀 장욱진 ‘먹그림’

중앙일보 권근영
원문보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번지고 남아있는: 장욱진 먹그림’에 전시된 8폭 병풍. 장욱진의 먹그림으로 만들었다. [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번지고 남아있는: 장욱진 먹그림’에 전시된 8폭 병풍. 장욱진의 먹그림으로 만들었다. [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먹그림(墨畵)을 그려봤습니다. 한 가지에 고착된 작업이 좋지 않아 유화 드로잉 외에 여러 가지에 손대봤는데 그리는 맛이 틀려 다 재미있어요.”(중앙일보 1979년 10월 9일자)

1979년 현대화랑 전시 때 먹그림 18점을 처음 공개하면서 장욱진(1917~90)이 한 말이다. 그가 동양화용 붓으로 화선지에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무렵. 1977년 책방 운영에서 손을 뗀 아내 이순경에게 문방사우를 마련해 주면서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을 권했지만 1년 넘게 손대지 못하는 걸 보고 화가가 붓으로 먹을 찍어 그리며 시범을 보인 게 계기였다. 『그 사람 장욱진』의 저자 김형국이 이순경에게 들은 얘기다.

먹으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화가는 스스로 ‘붓장난’이라고, 그런 붓장난으로 얻어진 그림을 ‘먹그림’이라고 불렀다. 1940년대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나온 뒤 김환기·유영국과 신사실파를 결성, 한국적 추상화를 확립한 장욱진이다.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먹그림’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실험했다.

장욱진의 먹그림이 경기도 두 곳에서 전시 중이다. 생애 마지막을 보낸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양옥에서 열리는 ‘장욱진의 붓장난’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번지고 남아있는: 장욱진 먹그림’이다. 규모는 작지만 장욱진과 친밀한 장소에서 그의 먹그림만으로 꾸린 드문 전시다.

화가는 새벽녘에만 먹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수안보의 농가를 고쳐 지내던 1979~82년 무렵 먹그림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먹그림은 한동안 뜸하다가 만년에 다시 등장했다.

장욱진 그림은 그가 머물던 공간을 중심으로 덕소 시기(1973~75), 명륜동 시기(1975~79), 수안보 시기(1980~85), 용인 시기(1986~90)로 나뉜다. 수안보 시기 먹그림 스타일의 정점을 이뤘다면 69세 이후 용인으로 옮겨서는 이전의 다양한 경향을 아우르며 작업 폭을 넓혀 나갔다. 마북동의 오래된 한옥 고택에서 지내면서 화가는 “설계도 없는 집을 지어 보겠다”며 미국 콜로니얼 스타일의 양옥을 지었다. 1989년의 일이다. 1953년 부산 피란지에서 그린 초기작 ‘자동차 있는 풍경’ 속 집을 꼭 닮았다.


장욱진이 활동하던 1960~80년대는 앵포르멜(비정형 추상미술), 단색조 회화, 민중미술 등 거대 담론이 오가며 100호 이상 대작들이 유행하던 때였다. 손 뻗어 그릴만한 크기의 작은 그림에 천착해 온 장욱진의 세계가 유별나다. 이들 작은 그림은 그가 기거하던 집에 걸렸을 때 가장 맞춤하다. 한옥 전시실에 판화 8점, 양옥에 먹그림 26점과 8폭 병풍이 전시 중이다. 달마, 거북이, 물고기, 뒷짐 진 노인, 날아갈 듯한 모습의 아이 등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를 종이에 수묵으로 만날 수 있다. 양옥 2층의 마지막 작업실도 화가가 바닥에 앉은 채 붓과 벼루를 사용하던 그대로 남겨뒀지만 비공개다. 내년 1월 31일까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도 먹그림 40여점을 모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먹그림을 민화·불교·일상 등 세 가지 소개로 구분했다. 논밭과 시골 초가집이 펼쳐진 풍경화, 가족들이 후에 8폭 병풍으로 표구한 작품 등이 나왔다. 지난해 개관 10주년 학술대회 ‘다시, 장욱진을 보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전시다. 내년 4월 5일까지.

권근영 기자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한혜진 아바타
    한혜진 아바타
  2. 2김우빈 신민아 결혼
    김우빈 신민아 결혼
  3. 3김종국 송지효 황금열쇠
    김종국 송지효 황금열쇠
  4. 4현빈 손예진 아들
    현빈 손예진 아들
  5. 5현빈 손예진 아들 비주얼
    현빈 손예진 아들 비주얼

중앙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