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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명품거리 만든 '긴자룰' …서울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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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숙 전 SH 도시연구원장

천현숙 전 SH 도시연구원장


서울 도심의 종묘 인근 세운상가 개발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 초고층 개발을 추진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 훼손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세운4구역을 둘러싼 이번 논쟁의 핵심은 결국 '개발사업을 문화재로부터 얼마나 이격하는 것이 적정한가'의 문제다.

1970~1980년대 산업 발전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세운상가 일대는 광화문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서 원도심의 도시 생태계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원도심의 도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도시 문화 차원에서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이 검토돼야 한다. 단지 재개발된 건축물이 문화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가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담지 못한다.

김포 장릉 인근 검단신도시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에 대해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이 있었지만 결국 입주가 진행된 선례가 있다. 당시에 문화재와의 적당한 이격 거리를 위해서는 건물 용적률이나 층고를 어떻게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구체적인 기준도 정했어야 했는데 법석을 떨다가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일본 도쿄의 명물 거리인 긴자 지역에는 이 동네만의 전통과 거리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주민과 상인들이 중앙정부와 협의해 자체적으로 만든 '긴자 룰'이 있다. 고층 빌딩이 난립하는 도쿄 내 타 지역과 차별화해 건축물 높이 56m 이하, 용적률 1100% 이하로 주민들 스스로 엄격히 관리한다. 하지만 주거와 생활편의시설이 결합된 개발을 하면 용적률을 더 쓸 수 있도록 쓰임과 밀도는 탄력적으로 풀어준다. 긴자 룰 적용으로 건축 디자인에 개방성과 현대적 감각이 더해지면서 긴자 지역에는 최신 부티크, 고급 백화점과 현대적 건축물이 지어져 명품 거리로 만들어졌고, 긴자 일대가 예술적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하지만 도쿄 긴자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단순한 '56m 높이 제한'이 아니다. 긴자 룰은 겉으로는 고도와 경관을 엄격히 묶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훨씬 정교한 규제와 완화 패키지에 가깝다. 세운지구와 종묘 일대에도 이런 식의 '서울형 긴자 룰'이 필요하다. 종묘 쪽으로는 건물 상부 매스를 뒤로 당기거나 슬림하게 설계해 '전망'을 확보하고, 그 대가로 뒤편 블록이나 상부에는 합리적인 밀도를 허용하는 선택적 고밀화 전략도 가능하다. 이격 거리 숫자만 붙잡고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떤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지방자치제하에서도 도시 계획 기능이 지방의회로부터 분리된 것은 전문성, 지역 특성에 맞는 자율적 발전, 주민 참여 확대, 국가 정책과의 조화 필요성 등 때문이다. 정치적 논쟁보다는 일본 긴자의 사례에서처럼 전문가들의 의견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종묘와 세운상가 재개발 문제는 과거를 지키면서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 서울의 숙제다.

[천현숙 전 SH 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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