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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는 무모했고, 朴·文은 적폐로 몰기 바빴다...악몽이 된 '자원외교', 지금은 [이유범의 에코&에너지]

파이낸셜뉴스 이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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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따라 흔들린 자원외교 변천사]
MB정부 석유·가스 자주개발률 4→14% 키웠지만
실사 없이 산 광구들, 한국 '자원외교' 암흑기 열어
지금은 자원이 국가 안보...'실패할 권리'까지 줘야


한국석유공사가 2009년 지분 100%를 인수했던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의 유전. 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MB정부 '자원외교'가 악몽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석유공사가 2009년 지분 100%를 인수했던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의 유전. 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MB정부 '자원외교'가 악몽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소비국이자, 동시에 에너지의 94%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섬’이다. 자원 확보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국가의 생존이 걸린 ‘안보’의 문제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한국의 자원외교는 정권의 향배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화려한 장밋빛 전망 뒤에는 수조 원의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뒤따랐고, 반대로 실패가 두려워 멈춰버린 투자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뼈아픈 실책으로 돌아왔다.

MB정부의 무리한 투자, 후임 정부 재무적 부담↑

20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자원외교가 국가적 전략으로 격상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990년대까지의 자원 확보가 단순한 수입선 확보에 그쳤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자원 확보의 질적 변화'를 꾀했다.
당시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였다. 참여정부는 에너지 안보를 위해 직접 광구의 지분을 확보하는 '자주개발률' 개념을 도입했다. 동남아시아에 편중되었던 시선을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와 아프리카로 돌렸다. 카자흐스탄의 카샤간 유전 지분 확보와 같은 성과는 한국이 국제 자원 시장에서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플레이어'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자원외교가 전 국민적 화두가 된 것은 이명박(MB) 정부 시절이다. '비즈니스 외교'를 표방한 MB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격적으로 자원 확보에 매진했다. 2007년 4%대에 불과했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임기 말 14%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캐나다의 하베스트(Harvest),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 광산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이때 성사됐다. 당시로서는 에너지 안보 수치를 단기간에 끌어올린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또 중동 일색이던 에너지 지도를 북미와 아프리카로 확장하며 공급망의 유연성을 확보했다.

문제는 '속도'와 '정치적 성과'였다. 임기 내 성과를 내기 위해 충분한 정밀 실사 없이 높은 가격에 광구를 매입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석유공사는 2009년 하베스트사를 인수하면서 노후화된 정유 부문(노스아일랜드)까지 떠안았다. 이후 유가 하락과 운영 부실이 겹치며 수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석유공사를 현재 자본잠식 상태까지 만든 원흉이 됐다. 광물자원공사는 당시 무리한 인수로 인해 부채가 쌓였고, 결국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어 광해관리공단에 흡수합병됐다. 이 시기 자원외교는 '경제성'보다 '정치적 구호'가 앞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당시 생긴 공공기관 부채는 후임 정부들에 막대한 재무적 부담을 안겼다.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를 무리하게 인수해 수천억대 국고 손실을 끼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뉴스1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를 무리하게 인수해 수천억대 국고 손실을 끼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뉴스1


박근혜·문재인 정부, 수사와 위축의 '잃어버린 10년'

MB정부의 과도한 투자 부작용은 다음 정부들에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부 중반기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약 10년의 세월은 한국 자원외교 역사에서 '투자의 암흑기'이자 '인프라 붕괴의 시기'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의 핵심은 '자원외교의 사법화'이다. 자원 확보라는 국가 전략적 과제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합리적인 투자 결정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성과가 거품으로 드러나고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자, 이를 '적폐'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사정 국면에 돌입했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과 감사를 받았고,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등이 배임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비록 주요 인사들이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미 '해외 투자는 잘못하면 감옥에 간다'는 공포 정서가 공직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 이는 공무원들이 신규 사업 결재를 피하는 복지부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자원외교는 더욱 위축됐다. 전 정권의 비리 청산 기조와 더불어 '에너지 전환(탈석탄·탈원전)' 정책이 맞물리면서 해외 자원개발은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해외자원개발 혁신 TF'를 구성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부실 자산을 조속히 매각하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래 가치가 충분한 자산들까지 '부채 감축'이라는 단기 실적을 위해 매각 리스트에 올랐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광해광업공단이 소유한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매각 중단 건이다. 니켈은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암바토비는 세계 3대 니켈 광산 중 하나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부채가 심각했던 광물자원공사(현 광해광업공단)는 암바토비 지분 매각을 강력히 추진했다. 당시 니켈 가격이 저점이었고 운영난이 심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며 니켈 값이 폭등하고 '공급망 안보'가 화두가 되자,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이 자산의 매각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만약 당시 계획대로 매각했다면 현재 한국 배터리 업계는 엄청난 공급망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일본의 자원개발 모델을 비교한 생성형 이미지. 챗GPT

한국과 일본의 자원개발 모델을 비교한 생성형 이미지. 챗GPT


자원은 '안보의 보루'...중장기적 시각·정치적 독립성 확보해야

자원외교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안보의 보루'가 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우선 자원은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영속적인 안보 자산이다. 5년 단임제 정부의 치적 쌓기에 이용되는 순간 자원외교는 부패의 온상이 된다. 정권을 초월한 국가적 컨트롤타워와 긴 호흡의 전략이 필수적이다.

'실패할 권리'를 인정하되 투명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자원개발의 성공률은 태생적으로 낮다. 실패가 두려워 투자를 멈추는 것은 국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대신 투자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리스크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력과 외교력이 결합된 '팀 코리아' 전략이 필요하다. 자원 보유국들은 이제 자원만 파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의 인프라 건설 능력, ICT 기술, 제조업 노하우를 패키지로 묶어 제공할 때 진정한 자원 확보가 가능하다.

일본은 정부가 민간의 '조력자'.. 실패도, 성공도 나누는 구조

일본의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는 한국의 자원외교가 벤치마킹해야 할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기관이다. 한국의 자원 공기업들이 직접 광구를 사고 운영하며 부채 위험을 떠안았던 것과 달리, JOGMEC은 철저히 민간 기업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탐사 초기 단계의 높은 위험을 정부 예산으로 대신 짊어진다. 민간 기업이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초기 탐사에 지질 조사 등을 대신 해주고, 가능성이 보이면 민간에 넘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민간 기업이 해외 자원을 개발할 때 필요한 자금의 최대 75%까지 출자하거나 채무 보증을 서준다. 실패하면 정부가 손실을 분담하고, 성공하면 이익을 나누는 구조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자원안보 컨트롤타워' 구축과 관련해 JOGMEC의 민관 협력 모델과 정치적 독립성을 가장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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