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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진정한 소통 필요… 佛지성 ‘사유 세계’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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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한병철/ 전대호 옮김/ 김영사/ 1만6800원

“얼마 전에 시몬 베유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 영혼 안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 내 안에 살면서 말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에세이 ‘신에 관하여’는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20세기 가장 고독하고도 급진적인 사상가 시몬 베유(1909~1943)를 오늘의 현실로 불러내 신자유주의 비판을 위한 사유의 자원으로 삼는다.

베유는 노동 현장과 전쟁터를 누빈 지성이었다. 시위 행렬의 선두에 선 노조활동가이자 스탈린 체제와 파시즘을 날카롭게 비판한 논객이었다. 공장 노동자였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국제여단 편에 서서 싸웠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을 피해 여러 나라를 떠돌다 결핵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서른네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사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병철/전대호 옮김/김영사/1만6800원

한병철/전대호 옮김/김영사/1만6800원

한병철은 베유의 신에 대한 명상과 신체적 초월 경험을 철학적 비판의 실천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유의 사유를 통해 소비와 생산이 전부가 된 세계에서 사라진 ‘초월의 차원’을 복원하고자 한다. 성과와 효율, 자극과 정보가 삶을 점령한 시대에 베유는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존재의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베유에 따르면 참된 충만함은 아래에서 쌓아 올리는 성취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힘, 곧 신으로부터 온다.

이 책은 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태도와 사회적 조건을 해부한다. 한병철이 지목하는 적은 소비적으로 세계를 삼키는 ‘자아’다. 스마트폰 피드의 무한한 스크롤처럼 세상을 끊임없이 효용과 자극, 정보의 관점에서만 스캔하는 자아 말이다. 여기에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세계에 투사하는 상상력, 계산적 사고에 갇힌 지능이 더해지며 자아는 ‘영혼의 비만’ 상태에 빠진다.

반대로 신에 가까워지는 길은 소유하지 않는 주의력, 소통으로 자신을 마비시키지 않는 침묵, 권력을 내려놓을 때 생겨나는 공백을 통해 열린다. 끝없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신을 향한 열림이 찾아온다. 한병철은 베유가 남긴 길을 따라간다면 디지털화한 작금의 신자유주의적 성과 사회 속에서도 참되고 본질적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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