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난 불행해지려고 태어났다”(‘인간은 신의 알레고리’)고 선언하는 시인이 있다. 백은선의 다섯 번째 시집 ‘비신비’(문학과지성사)에는 “깨진 유리 조각 위에서 텀블링을 연습”하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목격한 절망을 “허물어지는 아름다움”(‘소녀 경연 대회’)이라 부르는 화자가 등장한다. “파산하기를 반복했다”(‘비신비’)는 시인은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서로를 부수며 만들어내는 균열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파괴의 언어를 무한한 선율처럼 불러낸다.
그녀의 시에서 세계는 언제나 지옥의 한 장면으로 제시된다. “나조차 믿을 수 없는 마음, 그 지옥이 사람을 내내 세워놓을 수 있다는 게 믿겨요? 엄마?”(‘침묵의 서’). 요컨대 백은선에게 지옥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의 삶의 형식이다. “시작한 것을 멈추지 못해서 자꾸만 출발하고 출발하는 나의 두 발”(‘지옥 체험관’)처럼, 시인은 희망의 징표조차 사라진 세계를 받아들이며, 멈출 수 없는 생의 리듬을 처절히 견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은선이 사랑을 노래한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물론 그녀의 사랑은 낭만적이라기보다, “절망 속에 갇혀 노래하는/잘린 머리들”(‘기도’)의 비탄에 가깝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마차”(‘세계의 배꼽─Watch me burn’)라는 구절처럼, 시인의 사랑은 지옥을 살아내는 언어이자, 신비를 잃은 시대에 다시 신비를 발명하려는 시도다. 그렇게 고통과 아름다움, 축복과 저주,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모순의 한가운데서, 시인은 사랑의 노래를 온몸으로 부른다. “난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돌림노래 같다고 생각했어. 어떤 사람은 노래를 들어. (중략) 어쩌면 듣는 일은 가혹한 형벌 같기도, 축복 같기도 해.”(‘노래를 듣는 사람’).
이처럼 ‘비신비’는 신비를 믿을 수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신비를 노래하는, 역설의 시집이다. 불행의 언어로 사랑을 배우고,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을 꿈꾸는, 이 시대 가장 처절하면서도 뜨거운 노래. 지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끝나지 않는 절망의 시간이 있기에, 시인은 여전히 말하고, 노래하고, 이렇게 울부짖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계속되는 비명이에요.”(‘21세기식 사랑’).
강동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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