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이라고 가정해보자. 엔비디아가 최신 RTX 700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저렴한 모델조차 가격이 2,000달러를 넘고, 최상위 모델은 그 두 배에 육박한다. 렌더링 성능 향상 폭은 크지 않지만, 가속 업스케일링과 프레임 생성 성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메모리 대역폭 역시 이전 세대 대비 거의 2배 수준이다.
가상의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엔비아디아의 새로운 xx60 시리즈 그래픽카드는 불량 GPU를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몇 달간 출시되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카드들을 살 형편이 안 되거나, 출시를 기다리고 싶지 않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포스 나우가 비교적 ‘합리적인’ 월 구독료만으로 지금 당장 동일한 업그레이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간 요금제를 선택하면 비용 부담은 더 줄어든다.
이 모든 설정은 악몽 같은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이지만, 이상하게도 RTX 50 시리즈 출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엔비디아의 게임 부문이 AI 사업에 밀려 점점 더 부차적인 위치로 밀려나면서, 이런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며, 그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엔비디아가 가까운 미래에 게임 사업을 사실상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 거품이 꺼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재무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돈의 흐름 따라가보자
이 같은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수치는 상당히 극명하다. 엔비디아의 2025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은 57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에서 나온 매출은 얼마일까? 무려 512억 달러다. 전체 매출의 약 90%에 육박하는 수치로, 전 분기 대비 25%, 전년 동기 대비 66% 증가했다.
그렇다면 게임 부문 매출은 어떨까? 43억 달러에 불과하다. 전 분기 대비 1% 감소한 수치다. 해당 분기에 가장 강력한 그래픽카드를 판매했고, 재고와 가격 상황도 연초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불구한 결과다. 전년 대비로는 30% 증가했지만, 데이터센터와 게임 부문 사이의 성장 잠재력 격차는 압도적이다.
현재 기준으로 게임 부문은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8%도 차지하지 못한다. 게임 매출 자체는 계속 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매출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플랫폼 업체 불핀처(Bullfincher)는 이 비중이 얼마나 빠르게 변해왔는지도 짚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게임은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33% 이상을 차지했다.
Bullfincher |
앞으로 5년 뒤에는 이 비중이 어디까지 줄어들까? AI 거품이 치명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게임은 엔비디아 재무제표에서 아주 작은 각주 수준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젠슨 황이 게임 하드웨어 키노트를 굳이 진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 분야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이지만, 경쟁사의 재무 구조 역시 비슷한 경고 신호를 보여준다. AMD는 지난 분기 약 9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43억 달러가 데이터센터에서 나왔고 게임 부문 매출은 13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데이터센터 매출이 35억 달러, 게임 매출이 4억 6,2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지난해보다는 크게 개선된 수치다. 그럼에도 데이터센터가 AMD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게임보다 훨씬 크다.
이런 수치를 보면 게임 하드웨어 개발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일부 줄이는 선택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 그렇다고 게임용 GPU 생산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매출을 가능한 한 빠르고 크게 끌어올리길 요구하는 주주들 앞에 선 젠슨 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선택지는 명확해진다. 역사적으로 마진이 낮았던 새로운 게임 GPU를 내놓는 것과,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는 AI에 투입할 차세대 데이터센터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최근 몇 년간 순수 래스터화 성능보다 DLSS와 레이 트레이싱에 더 많은 비중을 둬온 점 역시, 이미 데이터센터 중심 전략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는 초기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RAM 탄광의 카나리아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부작용은 의외로 GPU 부족이 아니었다. 적어도 암호화폐 열풍 당시와 같은 수준의 공급난은 아니다. 대신 메모리 가격이 급등했다. 일부 사례에서는 RAM 키트 가격이 200% 이상 오르며 대용량 메모리 키트가 최상위 그래픽카드보다 비싸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비교적 평범한 사양의 RAM조차 게임 콘솔보다 비싼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용 RAM 가격이 치솟는 이유는 주요 메모리 제조사가 HBM이나 LPDDR 같은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주문에 밀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수익성이 더 높은 이들 메모리 생산으로 제조 라인을 전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NAND 칩 공급이 줄어들었다. 이는 다시 소비자용 메모리와 SSD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공급난은 RAM과 SSD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공급 대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마진은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론은 최근 소비자용 RAM과 SSD 브랜드였던 크루셜(Crucial)을 철수했다.
크루셜은 수익성이 있었고 인지도도 높았으며, 수십 년간 소비자와 게이머를 위한 뚜렷한 시장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마이크론은 NAND 칩과 서버용 메모리를 판매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브랜드를 계속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AI 수요 증가를 이유로 마이크론이 소비자 시장에서 이렇게 쉽게 발을 빼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역시 같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까? 엔비디아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 같은 미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정황도 있다. 엔비디아가 메모리 부족을 이유로 2026년 게임용 GPU 공급을 줄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급형 그래픽카드부터 공급이 축소되고, 초저가 제품군과 초고가 제품군은 당분간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엔비디아가 게이머를 뒤로하고 물러나는 첫 단계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시나리오
엔비디아의 향후 행보를 두고, 출발점과 전혀 다른 영역에서 성장과 수익을 찾아낸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IBM은 한때 컴퓨팅 하드웨어를 상징하는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프라를 떠받치는 존재에 가깝다. 핵심 하드웨어 사업을 매각한 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했고, 여전히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IT 서비스를 담당하던 부문을 다시 분사하고, 핵심 사업을 클라우드 컴퓨팅과 AI에 재집중시키는 구조 개편도 단행했다.
엔비디아 역시 비슷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게임 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하고, 해당 자회사나 분리된 조직에 GPU 기술을 라이선스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어도비와 같은 길을 걷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포토샵 개발사로 알려진 어도비는 2010년대 중반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를 출시한 이후, 한 번 구매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점진적으로 구독 모델로 전환했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모델이 엔비디아의 지포스 나우 스트리밍 서비스에 적용될 가능성은 없을까? 지포스 나우는 2023년 기준 2,5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서버 랙에 장착되는 GPU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데스크톱과 노트북용 전용 GPU를 완전히 뒤로하고, 게임 부문을 소프트웨어 또는 하드웨어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는 선택도 배제할 수 없다.
게임 산업이 TV와 영화 스트리밍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엔비디아가 넷플릭스처럼 물리적 매체에 해당하는 하드웨어 사업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모든 것을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모델로 옮겨갈 가능성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게임은 죽지 않는다, 형태만 바뀔 뿐
이 기사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지만, 엔비디아가 게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람들은 계속 게임을 즐기길 원하고, 그 안에는 분명 수익 기회가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 시장을 계속 공략할 것이다. 다만 그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엑스박스를 PC와 콘솔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이미 언급했다. 현 세대 콘솔 경쟁에서 엑스박스가 다소 애매한 위치에 놓인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엑스박스의 중심이 게임을 구매·소유하는 방식보다 스트리밍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이동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엑스박스 게임 패스 가입자는 3,7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이번 세대에서 판매된 엑스박스 시리즈 X·S 콘솔 수보다 많은 규모다.
엔비디아 역시 게임 부문을 분사할 수도 있고, 아예 게임용 GPU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게임 기업이 AI 수요에 힘입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면, 게임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AI 중심 전략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엔비디아 역시 비슷한 선택지 앞에 서 있다. 게임 부문을 분사할 수도 있고, 게임용 GPU 생산 자체를 중단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게임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 AI 수요에 힘입어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는 순간, 엔비디아 역시 AI를 최우선에 두는 전략으로 급격히 기울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가 어떤 쪽을 선택하든 그 여파는 가장 먼저 게이머에게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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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Martindale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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