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통령이 생중계 중인 업무보고 자리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에 대해 뜻밖의 질문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설마 환단고기에 대한 글을 쓸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많이.
환단고기 발언의 파장과 반응에 대한 해설 기사(12.15)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5/12/15/LHWG2ZJFTNFH3GFNF3UAOWZ3ZQ/
‘전문기자의 窓’ 칼럼: ‘낯뜨거운 국뽕’ 환단고기(12.16) https://www.chosun.com/opinion/desk/2025/12/16/TQY5A5W265HR5EN7UIWCWXTICM/
[조선멤버십 기사: 악인전 10회] 환단고기의 창작자 이유립(12.16)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12/17/DPPGAVN75NBB5APF52W5776DO4/
‘신문은 선생님’ 지면의 환단고기 해설 기사(12.17)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5/12/18/WDAWCOZVCRFRXGNLMUADO6YCRQ/
역사학계가 환단고기 발언을 비판했다는 스트레이트 기사(12.17)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5/12/18/7J66YZ3YF5ANPAHXZF627EVKZY/
나는 이 기사들을 통해서 환단고기란 책이 왜 위서인지, 그리고 왜 이유립이라는 사람이 창작해 1979년에 발표한 가짜 책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식 입장인지를 밝혔다. 더 이상 개발도상국 시대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턱없는 국수주의의 꿈이 담긴 이 책에 미련을 두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도 남은 논의 네 가지를 마저 정리해 보겠다.
①대통령은 왜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자리에서 느닷없이 환단고기 얘기를 꺼낸 것일까?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처럼 ‘환빠 때문에 골치 아프지 않느냐’는 의도였다면(그럴 리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한국사를 담당하는 주무 관청인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게 질문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물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노무현 정부 때 고구려연구재단의 후신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에 대응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고구려를 포함한 한국 고대사를 강탈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기관에 오히려 ‘옛날에 중국 땅은 모두 우리 영토였다’는 내용이 담긴 환단고기를 언급했다? 이건 한국판 동북공정으로도 볼 수 있는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뭔가 이상할뿐더러 무슨 의도가 있는 질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보수·우파 성향인 것으로 알려진 ‘환빠’를 옹호한 듯이 발언한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련의 기사에서 좌파 성향의 인물 중에도 강도 높은 ‘환빠’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대통령과 정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 중에도 환단고기를 들고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인물이 있다는 의미였다.
여기에 대해, 환단고기를 진서로 보는 입장인 특정 인사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꽂으려는’ 대통령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강단 학자들에게 이 얘기를 꺼냈더니 다들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되는데…’라며 우려했다. 현 박지향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 임명됐으며 임기는 2027년 1월까지 3년이다.
②학계가 이번에 환단고기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것은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고고학 관련 학회 48개 단체가 1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환단고기는 1979년에 이유립이 쓴 명백한 위서(僞書)”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위서는 말 그대로 ‘가짜 역사서’일 뿐 어떤 사료적 가치도 없다. 이는 조작된 증거나 위증이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 사이에는 아무런 학문적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학계를 향한 ‘사이비역사’의 일방적 비방과 터무니없는 주장이 존재할 뿐인데, 이를 학문적 논쟁이나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성명서에서 “역사학계는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명실상부한 국민주권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이재명 정부는 ‘사이비역사’를 어떠한 형태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라고 쓴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썼다고 보기엔 상당히 낯뜨거운 부분이지만, 너무 정부를 비판하는 어조로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넣은 것으로 좋게 보고 싶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 학계는 환단고기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피해 왔다. 인문학자들이란 본래 딱부러진 말을 잘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대체로 위서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창작한 위서’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건 향후 환단고기를 진지한 책으로 보고 논의하는 자는 학자도 아니라는 뜻이 된다. 언제까지 이 원칙이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당시 언급한 유사 역사학 서적 '환단고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쏠린 가운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서점에 '환단고기'를 다룬 서적이 놓여 있다. /뉴스1 |
③‘위서’와 ‘진서’의 구분은 책 내용에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혼동한다. “‘일본서기’는 인용하면서 왜 환단고기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서(眞書)와 위서의 구분은 서지적인 문제다. 지금 전승되는 일본서기는 서기 8세기 나라 시대에 완성된 그 책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진서’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 허무맹랑하고 부정확한 부분이 워낙 많기 때문에 거르고 분석해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누군가 만약 자기가 쓴 책을 내놓고 “이게 신라 때 경덕왕의 명을 받아 집필된 ‘고조선사’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위서다. 환단고기가 꼭 그런 책이다. 실제로 고서가 아니면서 과거의 인명에 의탁해서 그가 쓴 책이라고 사기를 쳤다는 얘기다. 환단고기에게 영향을 준 ‘규원사화’는 진서라는 의견과 위서라는 의견이 모두 있는 책인데, 조선 숙종 때 쓰인 진서라고 해도 그 책에 적힌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다른 문제가 된다.
④‘찬란한 대(大)아시아 문명’의 뿌리는 일제(日帝)였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에 ‘같은 문명인 한자 문화권에 들어 있는 아시아 인종이 뭉쳐 유럽 인종에게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19세기 후반 다루이 도기치(樽井藤吉)의 ‘대동합방론’은 동문동조(同文同祖) 관계에 있는 일본과 조선은 합방하고, 다른 민족인 중국과는 연대해 서양 세력을 아시아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를 계승한 자가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였다. 극우 단체인 흑룡회를 설립한 그는 ‘동이(東夷)·북적(北狄) 문명론’을 내세웠다. 우리는 중국이 보는 ‘동이’의 개념에 일본도 포함된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이 이론은 일본, 조선, 만주, 시베리아를 하나의 권역으로 설정하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한족(漢族)과 다퉈 왔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우치다는 전(全) 아시아가 사실은 일본의 옛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대동아공영론으로 발전되는데, 우치다의 논리에서 ‘일본’을 ‘한국’으로만 바꾸면 바로 환단고기가 된다.
이는 마치 ‘도전자 하리케인’이나 ‘유리의 성’이 알고 보니 원래 일본 만화인 것을 알았을 때와 같은 기시감이 드는 대목이다. ‘환빠’들에게 이제 제발 좀 정신을 차리라고 권하고 싶지만, 쉽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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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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