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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기회복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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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을 선언했을 때 많은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은 금년도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그런 비관적 예상과는 달리 세계 경제와 미국경제는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금년도 세계경제성장률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3.2%로 예측되고, 미국의 성장률도 지난해보다는 떨어졌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상당히 높은 약 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된 이유는 금년 상반기에 관세 인상에 대비해 기업들이 선 수출입과 생산을 늘렸고, 주요국들과의 관세율 협상이 당초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타결되었으며, 무엇보다 AI 관련 막대한 투자, 주식시장의 큰 폭 상승과 견조한 소비에 기인하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선전

내년 국내외 전망도 나쁘지 않아

그러나 이는 경기순환적 개선일 뿐

한국 경제의 조로 현상 고쳐나가야


한국 경제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정국 혼란으로 인한 소비위축, 미국의 관세정책, 통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불확실성,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상반기에는 크게 침체하였으나 새 정부 출범, 소비쿠폰 발행,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반도체 슈퍼사이클 본격화, 소비심리 회복 등으로 인해 하반기에는 회복 조짐을 보여 당초 0%대 예측보다 높은 1%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3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1.3% 성장해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내년도 국내외 전망도 그리 나쁘지 않다. 국제통상 환경 변화가 교역 신장률을 위축시키고, AI 거품론 등 불확실성이 높지만, 관세율 관련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고 각국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어 세계 경제는 금년보다는 다소 낮지만 3% 내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도 미 연준은 2.3%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관세 수입을 감안하더라도 감세로 인한 내년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약 6%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그동안 AI 디지털 혁신 주도로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며 연일 신고가를 갱신해왔던 증시 활황에 의한 자산 효과는 소비 증가세를 지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관론자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를 내년도 미국 경제의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세 인상이 점차 물가 압력으로 전이되어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미 국채 발행이 순조롭지 않거나 AI 버블론이 힘을 받게 될 불확실성도 높은 편이다.

우리 경제의 전망은 더욱 낙관적이다. 금년 하반기 들어 일어나고 있는 회복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확장되고, 건설 경기가 오랜 침체에서 바닥을 치고 나아지며 소비 회복세가 성장률을 견인해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년 들어 집값이 크게 올랐고, 주요국 중 최고 상승률을 보인 국내 증시에서 비롯되는 자산 효과와 재정확장 기조는 내년도 소비 회복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기관에 따라서는 내년 성장률을 2% 이상으로 보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기순환적 측면에서 본 개선이다. 금년도 우리 경제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내년도에 잠재성장률 정도로 성장한다고 해도 이는 세계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성장률로 향후 한국경제의 위치는 점점 내려갈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향 추세가 지속된 지는 이미 오래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어느 경제나 당면하게 되는 현상이지만 우리 경제의 하강 속도는 과거 어떤 선진국의 경우에 비해서도 너무 가파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대에서 조로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재정·통화정책에 기댄 경기 대책은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필요한 구조혁신 정책은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0여년 우리 경제를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준 가장 큰 요인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모두 얻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대전 후 부상한 자유무역질서란 국제환경(天時)이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제조업과 수출로 일어설 기회를 열어주었고, 한미동맹에 의한 막대한 경제·안보적 지원, 선진 이웃 일본으로부터의 기술이전과 자본 도입, 후진 이웃 중국과의 생산공급망 형성을 통한 지리(地利),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온 신분계급 질서의 빠르고 완전한 붕괴로 국민 모두에게 열리게 된 동등한 경쟁기회가 준 역동성과 인적 자본의 급성장, 시대가 요구한 적절한 정책 방향 도입과 강력한 행정적 추진이란 인화(人和)가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천시와 지리는 우리에게 이미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인화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인화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은 좁아진 계층 간, 기업 간 사다리를 넓혀 역동성을 높이고, 돈과 인재의 흐름을 개선하며, 정부의 기능과 관료의 역량을 바로 잡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경제·사회를 지배하는 제도와 보상유인체계를 혁신하는 것이다. 지금은 경기 회복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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